북한 출신 화교 "북 꽃제비는 나도 생소..고향 그립다"

입력 2012. 1. 4. 14:30 수정 2012. 1. 4.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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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북한 출신 두 화교 처녀 이야기

"어린시절 오자미 놀이와 제기차기, 고무줄 놀이를 하며 놀던 고향이 그리워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애도기간 도중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에서 만난 북한 출신 화교 리우(28)는 외모나 어눌한 말씨가 영락없이 순박한 산골처녀다. 자강도 강계시 인근의 한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2006년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중국 단둥으로 나왔다.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북한이 화교들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 사실상의 '방출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살길을 찾아 중국에 나와서는 한국식품 도매를 하는 경상도 출신 한국인 사장 밑에서 일했다. '호구'를 얻어 중국 국적을 완전회복하기 위해서는 5년간 북한에 돌아가지 못하기에 고향이 그리워도 가지 못했다. 악착같이 돈을 모은 리우는 지난 11월 중국 국적을 완전회복한 뒤 볜지앙루(변강로) 부근에서 남과 북의 요리가 모두 나오는 퓨전식 한식당을 열었다. 가게 이름은 한국인 전 사장이 지어줬다.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 손님들이 들이닥치면 유창한 중국어로 5~6명의 중국인 종업원을 리드할 때는 산골소녀의 모습이 아닌 여장부로 변신한다. 리우는 이제 중국신분증도 만든 만큼 올해는 오래도록 못간 고향 땅을 방문할 예정이다.

 비교적 최근에 중국으로 나온 리우가 전하는 북한 소식은 최근 한국 보수언론들의 보도와는 사뭇 다르다. 리우는 "나는 화교출신이라 일자리를 주지 않아서 나왔지만 고향 사람들은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와 비교하면) 그런대로 살만하다"며 "군수공장이 많아 배급도 나오고 집집마다 텃밭도 있어 떠날 때까지 식량사정도 나름 괜찮았다"고 말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이후 북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북쪽이 나름 안정을 찾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신의주도 단둥만큼은 아니지만 상거래가 활발하고 잘산다고 들었다"며 북에 시장경제가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전한 뒤 "단둥은 사람들이 돈독이 올라 싫고 순박하고 정많은 사람들이 있는 고향이 더 좋다"고 말했다. 리우는 "한국 티브이에 꽃제비가 우글거리는 비참한 북한 이야기는 나도 생소하다"며 "도대체 누가 어디서 그런 걸 찍어가지고 오는 지 모르겠는 데 어렵긴 하지만 그 곳도 사람사는 곳"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한국에도 거지가 있지만 그것만 부각시키면 이상하게 비치지 않겠나"며 "북에서도 부지런하거나 영리한 사람들은 잘 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못산다"고 덧붙였다.

 같은 나이의 북한 출신 화교 ㅁ(28)도 역시 같은 해인 2006년 평양에서 단둥으로 왔다. 평양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중등교육을 받았다. 일자리가 없어 먼저 부모가 나와 있는 이곳 단둥으로 와 주로 한국인을 상대로 관광가이드를 한다. ㅁ은 "단둥에 비해 평양이 훨씬 깨끗하고 번듯하다"며 "말도 한국어가 편하고 음식도 한국음식이 입맛에 맞는다"고 말했다. 그는 "94년 김일성 주석 사망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며 "그 때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평양이 깨끗하긴 하지만 통제하는 것이 많은데 단둥은 나름 자유가 있어 장단점이 있는 듯 하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일 사망 이후의 북한체제에 대해서는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뒤를 이은 이가 잘해 나가지 않겠나"며 "나름 이유가 있어 세운 것이고, 그곳 사람들은 따라가게 돼 있다"며 북에 급변사태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나이의 두 화교 처녀는 "한국도 가 보고 싶고 북한도 가고 싶은데 여권에 한국비자 있으면 북한방문이 어려울 수도 있다"며 "남과 북이 다시 예전처럼 화해하고 교류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단둥에는 리우같은 북한 화교들이 최소 8000명에서 많게는 1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대부분 북한과의 무역이나 관광가이드, 식당업 등에 종사한다. 국적은 중국인이지만 정서는 북한 쪽에 더 가깝다. 최근 대북 무역등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이들은 지난해 말 단둥에 북한출신 화교 협회를 발족할 예정이었으나 김 위원장의 돌연한 사망으로 출범을 연기했다.

단둥(랴오닝성)/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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