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소뼈 나뒹굴고 기름띠 '줄줄'.. 파주·안동 '구제역 매몰지'를 가다

2011. 8. 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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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소뼈였다. 소 101마리가 묻힌 구제역 매몰지에는 다리와 척추뼈, 발굽이 나뒹굴었다. 30㎝쯤 되는 다리뼈를 손가락 끝으로 집어 올리니 묵직했다. 푹푹 찌는 날씨에 파리떼가 날아다녔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39.

지난해 12월에 소가 매장된 후부터 이곳에선 기름띠가 흐르고 있다. 악취와 기름띠가 심해지자 파주시는 지난달 소 사체를 파냈다. 매몰지 옆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그곳에 사체와 미생물, 왕겨를 섞어 넣었다. '호기성(好氣性) 미생물 처리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기자가 현장을 찾은 지난 23일에도 여전히 비닐하우스 왼쪽 측면으로 기름띠가 새나왔다. 이 기름띠는 작은 웅덩이를 만들다 도랑으로 떨어졌고, 민가 방향으로도 20m쯤 흘러나왔다. 농작지가 붙어 있는 비닐하우스 바깥에선 소뼈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땅 주인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사유지에 매몰한 곳도 있다. 소 7마리가 묻힌 광탄면 마장리 246의3의 소유주인 김정미(45·여)씨는 "기름띠가 도는 땅에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 토양이 아무 쓸모없게 돼 파주시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고 분노했다. 이 매몰지 바로 앞으로는 하천이 흘렀다.

경북 안동시의 매몰지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소 1328마리가 매몰된 안동시 서후면 대두서리 902번지 매몰지는 규모가 9000㎡에 이른다. 지하수 오염을 감시하기 위해 파 놓은 관측정에서 오른쪽으로 20m쯤 떨어진 곳은 기름띠 웅덩이가 형성됐다. 기름과 토사가 섞여 젤라틴처럼 말랑말랑하게 굳은 물질은 젓가락으로 들어올려도 부서지지 않았다. 이 매몰지와 하천은 불과 240m 떨어져 있다.

집중호우로 토사 10여t이 유실된 매몰지도 있다.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 산 21의3. 산을 깎아 만든 매몰지에서 기름띠 섞인 토사가 바로 아래 농지를 덮쳤고, 모는 까맣게 썩어버렸다.

매몰지 경사는 가팔랐지만 축대 높이는 무릎에도 닿지 않았다. 눈으로 보기에도 아슬아슬했다.

정기적으로 매몰지 지하수 검사를 하지만 이마저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북보건환경연구원 북부지원이 지난달 8일 이곳 배수로에서 채취된 물을 시험한 결과 염소이온과 암모니아성질소가 모두 검출됐다. 가축매몰지 환경관리지침상 염소이온, 암모니아성질소, 질산성질소 중 두 물질이 동시에 검출되면 추후 재검사를 한다. 두 물질의 농도가 첫 검사 때보다 모두 상승하면 전문가 분석을 거쳐 침출수로 판정된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이곳 지하수는 2차 시험에서 침출수가 아닌 것으로 판정됐다. 안동시는 1차 시험 때 매몰지 바로 옆 배수로에서, 2차 시험 때는 배수로보다 매몰지에서 더 떨어진 관측정에서 물을 채취했다. 각각 다른 지점에서 채취한 물로 시험한 것이다.

이 매몰지 인근 주민 중 일부는 지하수를 마신다. 주민 고상운(47)씨는 "한때는 시에서 제공하는 생수를 마셨지만 먹어도 된다고 해서 지하수를 마시고 있다"고 했다.

침출수는 매몰지 안에 묻힌 가축 사체가 부패되면서 나오는 썩은 물과 핏물로, 갈색을 띠고 독한 냄새가 난다. 각종 유해한 세균과 병원균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침출수에 섞여 있는 병원균은 살모넬라균, 세레우스균, 클로스트리듐 등으로 식중독과 구토, 패혈증 등을 유발한다.

지난해 말 발생한 구제역으로 전국 4799개 매몰지에 가축 996만 마리가 묻혔다. 매몰지는 이렇게 관리되고 있었다.

안동·파주=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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