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파라치' 한명 때문에 전국 노래방 '곡소리'

2009. 3. 2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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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사회부 조은정·박중석 기자]

몰카와 녹음기 등 전문 장비로 무장한 노래방 사냥꾼, 일명 '노파라치(노래방 파파라치)'가 서울을 비롯해 전국을 휩쓸고 다니면서 수백여 개 업소가 무더기로 영업정지를 당하고 있다.

단 하룻밤 사이에 서울 은평구 일대 노래방 수십 곳이 무더기로 영업정지를 당하기도 했다.

이에 전국 노래방 업주들은 경쟁 유흥업소들의 사주를 받은 함정 단속이라고 주장하면서 강하게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1일 밤 중년의 남성이 서울 응암동 일대 노래방을 순회하기 시작했다.

평범한 차림새의 이 남성은 노래방에 들어가자마자 캔 맥주를 시키고, 자연스럽게 도우미를 불러달라고 부탁한 뒤 30분 만에 서둘러 자리를 뜨고 다시 다른 노래방을 찾아 나섰다.

그의 품 안에는 만년필이나 넥타이 핀 등으로 위장한 몰래 카메라와 녹음기가 담겨 있었다.

이 남성은 손님인척 가장해 몰래 카메라로 가게 입구부터 모든 장면을 촬영했으며, 완벽한 녹취를 위해 업주에게 두세 번 되물어 "주류를 판다"거나 "노래방 도우미가 있다"는 대답을 유도해 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만약 노래방측에서 도우미 제공을 거절하면 "아내와 함께 여행가서 멋지게 노래를 불러주고 싶은데, 음치여서 같이 불러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등의 그럴듯한 핑계를 대면서 업주를 안심시켜 끝내 도우미 부르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처럼 '신출귀몰'하며 은평구 응암동 일대 노래방만을 골라 불법 영업을 제보한 K(54) 씨는 지난 11월 1일 초저녁부터 다음날 새벽 3시까지 몇시간 동안 노래방 13곳을 적발해 구청에 한꺼번에 신고했다.

불법 영업으로 신고 접수된 노래방들은 당장 이달 초부터 30일에서 많게는 80일의 영업정지에 들어갔고, 수백만 원대의 벌금을 물게 됐다.

'노파라치' K 씨의 활동 무대는 전국전역이다.

부산, 광주, 대전 등 주요 도시를 비롯해 강원도의 소도시까지 K 씨의 발길이 닫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들 노래방 업주들은 불법영업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노래방 업주들은 "신고 보상금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K 씨가 몰래 카메라까지 동원해 불법 적발에 나선 것은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유흥업소 업주들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면서 "의도적인 노래방 죽이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업주들에 따르면 경기 침체로 유흥업소들 간에 경쟁이 치열해지자, 주류판매나 접대가 허용된 1종 유흥업소 가게들이 주류판매가 금지된 2종 업소인 노래방들의 불법 행위를 전문 제보꾼과 짜고 일부러 구청에 신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응암동 H 노래방을 운영하는 송모 씨는 "불경기로 가게 세를 몇 달 째 못 내고 있는데, 수십 일 영업정지를 당하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한다"면서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 일대 노래방들은 다 망한다"며 하소연했다.

노래문화업중앙회 대전시협회장 김완섭 씨는 "K 씨의 출몰로 2007년도 하반기 대전에서 20곳의 노래방이 적발됐다"면서 "업주들이 K 씨의 함정 단속에 단체로 행정소송을 걸어 재판에서 영업정지기간이나 벌금이 일부 삭감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편 K 씨는 "몇해 전부터 노래방 문화가 퇴폐로 흘러가는 것에 경종을 울리고 싶어 순전히 사비를 털어 전국을 돌면서 불법 영업을 적발해오고 있다"면서 유흥업소 사주 등의 의혹은 부인했다.

은평구 노래방 업주들은 K 씨가 일부러 불법 영업을 유도해 놓고 구청에 고발해 영업을 방해했다며 지난해 11월 서울 서부지검에 업무방해 혐의로 K 씨를 고소하는 한편, 단체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진정서까지 제출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K 씨 사연 '나는 왜 노파라치가 되었나'

-2007년 이후 사비 2천만 원 들여 단속활동-사주 의혹, 업주들 협박 받기도

전국을 무대로 노래방 불법 영업을 제보해 수백여 개의 노래방을 영업정지 시킨 '노파라치' K 씨.

노래방 업주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인 전문 사냥꾼 K 씨는 왜 하필 노래방만을 골라 전국을 떠돌게 됐을까?

수차례 시도 끝에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K 씨는 "차마 밝힐 수 없는 사연 때문에 노래방 단속을 시작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지난 2007년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 노래방 도우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K 씨는 그때부터 몰래 카메라를 들고 노래방 단속에 나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유로 노래방 불법영업 적발을 시작했지만 감시를 하면 할수록 사회적인 문제라고 느꼈다는 K 씨는 이후 사명감 때문에 전국의 노래방을 찾아 떠돌고 있다.

인터뷰 바로 전날에도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노래방 2곳의 불법 영업을 적발했다는 K 씨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등 안 가본 곳이 없다"면서 "전국적으로 도우미나 음주판매 등 불법 영업이 퍼져 있다"고 전했다.

가스 설비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틈틈이 전국을 다니면서 노래방 수백 곳을 적발했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여기에 들인 개인 비용만 2천만 원.

최근 K 씨의 제보로 영업정지와 벌금을 물게 된 업주들에게 "죽이겠다"는 협박문자나 전화까지 오는 등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지만 K 씨는 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불법 영업 노래방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는 1종 유흥영업자들의 사주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관계없고 개인적으로 하고 있다"며 부인했다.

K 씨는 "노래방 업주들의 잡지에 내가 소개되고, 심지어 주민등록번호까지 돌아다니고 있어 위축됐다"면서도 "아예 공식 단체를 조직해서 이 문제를 더 공론화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마지막으로 "어떠한 이유에서건 불법 퇴폐 영업은 근절돼야 한다"면서 "나로 인해 노래방 문화가 조금이라도 정화돼 건전하게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aor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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