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취미로 한 것이 시대를 잘 타서 성공"

2010. 10. 28. 10:5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ㆍ병맛만화의 아이콘, 이말년

20대 기획에서 그를 만나는 것은 이런 이유다. 어떻게 보면 그는 성공한 20대다. 비록 취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또 돈도 벌 수 있었으니. 게다가 그 세대의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가 그린 엉뚱한 상상들은 그 정수(精髓)를 담고 있다고나 할까. 그는 자신의 '성공'이 흐름을 잘 타서라고 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그것 역시 동년배 세대, 더 나아가 2010년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슴 한 구석에 항존하는 불안이다. <편집자 주>

그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홍대앞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서빙하는 종업원에게 물었다. 이말년을 아냐고. "물론 안다"는 것이 그의 답이었다. "아마 사장님도 알 걸요?"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그냥 길거리에 세워놓고 보면 평범한 20대 '훈남'이다. 팬사인회 등에서 만난 사람들로부터 구전된 '그림에 비해 너무 멀쩡하게 생겼더라…'는 게 인터넷에서 한때 화제였다.

작가 이말년을 처음 알린 것은 촛불시위 때였다. 담배를 피우던 청년이 버스에 급하게 올라타다 담배를 돈통에 넣고 만다. 버스에는 불이 붙고 아이들은 소독차마냥 연기나는 버스를 신나서 따라온다. 갑자기 운전사의 눈이 불타오르며 한마디를 한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청와대 앞 최후의 저지선 XX(명박)산성이 시야에 들어온다. 청년은 눈을 불태우며 말을 한다.

"…강행 돌파한다!" 운전기사의 화답. "훗, 그래야 내 손님답지!" 그리고 버스에 탄 승객은 모두 사망. 어찌보면 황당한 결말이다. 누리꾼은 '기승전병'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이말년의 작품들은 병맛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때 DC인사이드 카툰연재 갤러리에 그것을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때 야후에 있던 담당자가 보고 연락을 주면서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그린 것인가요.

"그때 4학년 교양과목이었는데 듣기 싫어서 연습장에 막 끄적거렸습니다. 원래 처음 이야기는 노히트노런이라는 사이트에 자기가 겪은 이야기를 올리는 코너가 있어요. 버스를 기다리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버스에 타서 동전을 내면서 탁탁 털어야 하는데, 꽁초를 내서 불이 붙었다…는 콩트였는데, 수업시간에 생각나서 연습장에 그렸습니다. 나중에 컴퓨터로 다시 옮긴 것이죠."

이말년의 본명은 이병건. 1983년생이니 올해 27살이다. 왜 '말년'이라는 필명을 지은 것일까. "군대 말년 때 편했어요. 인생의 말년도 이렇게 편하면 좋겠다, 유유자적하게 급한 것 없이 살고 싶고." 팬들의 공감을 받은 만화에는 이런 단편도 있다. 'Ms. 보험판매왕'이라는 작품이다. 초겨울 오후, 낮잠을 자고 있는 작가의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한 달 5만원, 10만원으로 보장도 받으시고 목돈도 마련하실 수 있는 저축성 보험상품이 있어 전화드렸습니다." 작가의 답. "죄송하지만 제가 돈이 없어서 지금 보험 못들 거 같은데요." 하지만 수화기 너머 상대방은 끈질기다. "아니 5만원, 10만원도 없으세요?" '학생'이라고 답하자 "학생이면 용돈 받으시잖아요.", "안 받아요," 끝날 줄 알았는데 저쪽 여성은 "집이 어려우시면 알바라도 해서 돈을 보태야 하는 것이 아니냐", "너무하시네요, 100만원 200만원도 아니고 5만원, 10만원으로 보험드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힘드세요?"라고 되묻는다. 얼굴이 시뻘개진 작가는 "야이 쌍X년아!"라고 답한다. 개그만화지만 동년배 세대들의 아픔이 배어 있는, 묘한 울림이 있는 만화다.

실제 경험담인가요.

"마지막에 '야이 쌍X년아!' 하는 대목만 빼고는 실제 경험한 거예요. 사실 그런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왠지 궁색해 보여서…. 그때는 '아 몰라요, 몰라요'라고만 답했는데, 만화로 그렸는데 열불이 터지더라고요. 그 아줌마 창의력 대장이죠. 어떻게 돈이 없다고 하니까 일해서 가입하라고 그런 말을 하는지."

시각디자인학과를 2009년도에 졸업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같이 졸업한 친구들은….

"그래도 우리 과는 취직이 잘되는 편이에요. 박봉이라서 그렇지. 물론 취직 안된 애도 있고, 대학원에 진학한 친구들도 있고…."

야후코리아와 네이버에 연재되는 그의 만화들은 열혈 팬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팬들은 그의 작품을 분석해 숨어있는 패러디 코드를 '발견'해 재음미하고 있다.

언제부터 만화가나 웹툰 작가가 되고 싶었습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구체적으로 되려고 노력하거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를 테면 어렸을 때 '꿈이 뭐야'라고 물어보면 '대통령', 이런 식으로 되는대로 쏴지르잖아요. 사실 뭐가 된다는 상상은 한번도 안했습니다. 실제로 노력도 안했고, 시대를 잘 타서 취미로 올린 것이 인터넷 시대이다 보니 사람들이 보게 되었고, 출판만화 시대였으면 꿈도 못 꿀 일이지요."

'병맛만화의 대가', '잉여의 아이콘'과 같은 수식이 따라다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딱히 '병맛'으로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것보다는 나름대로 '개그코드'로 개그만화를 그린 것인데, 사람들이 그런 장르로 분류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진짜 언더그라운드에 해당되는 병맛만화들-이를테면 잉위, 맨발의씨붕이, 개벌레 작품들은 또 나름대로 다릅니다. 재미있어요. 끝내면서 쿨한 것도 있고…. 보통 학교에서 만화를 그리면 그런 식으로 끝납니다. 구체적으로 스토리도 안짜고 대충. 향수도 느껴지고 재미있게 봤습니다."

댓글을 보면 지지하는 팬 층이 두꺼운 편인데요.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 것 같습니까.

"사실 제 만화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림체가 역겨워 못보겠다, 이런 고등학생도 있고요. 20대 중후반 직장인 층에서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일단 좋게 봐주시는 분들은 단점을 잘 안보는 것 같아요. 제가 조금 더 분발해야지요."

그는 여러 번 자신이 군대식 용어로 '요즘 빠졌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사람들이 이말년 만화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 것 같냐고. 그는 의외성과 패러디라고 했다. "패러디라는 것은 기존의 웃긴 소스를 가져오는 것이지요. 아는 것이 나오면 반갑고 즐겁다고나 할까. 최근 들어 그런 것을 찾는 노력이 줄어들었어요. 의외성이라는 것도 하다보면 인간이 패턴에 익숙해지는 겁니다. 패러디도 한두 번해야 재미있지 점점 웬만큼 하지 않으면 빵 터지지 않습니다." 자학코드다.

만화를 그리는 걸 그만둘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정확히는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의로 그만두든, 타의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두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문제이지, 계속 할 수 있을지 지금 미리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말년 시리즈가 물이 쭉쭉 빠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은 저번 연도에 끝내려고도 생각해봤어요. '감사합니다. 끝' 이렇게 쓰고. 하하. 어차피 단편이니까 끝내기도 쉽잖아요. 사실 돈 때문에 하고 있어요. 잘 모르겠어요. 이걸로 죽을 때까지 할 수는 없으니까."

혹시 그만두면 뭐할 거예요.

"망하면 총각과일, 이런 거 해보고 싶어요. 아파트단지 근처에다가. 아니면 PC방을 할까…. 저는 광고라든지, 그런 것 아낌없이 합니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총각과일이라도 하려면 또 돈이 필요하니까…."

진짜 말년, 인생 후반기 자신의 삶에 대한 어떤 이미지 같은 게 있습니까.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있는.

"기와가 '간지'나게 깔려 있고, 볕이 잘 드는 한옥을 생각합니다. 겉은 한옥이지만, 안의 시설은 현대식으로 꾸민 그런 집. 일단 강남에 빌딩을 사서 그걸 없앤 다음 거기에 짓는 거예요. 대청마루에서 숭늉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생각합니다. 장기를 둔다든가. 동양적인 것을 좋아해요. 마당 연못에는 잉어도 유유자적 헤엄치는…. 역시 그러려면 돈을 엄청 많이 벌어야겠죠?"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출시-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