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시대와 소통하는 소셜테이너 김여진

입력 2011. 6. 30. 14:18 수정 2011. 7. 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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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사회를 모른 척하고 행복해지는 건 불가능"

그는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기대를 배반당하면 사람은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실망하거나 놀라거나…. 지난 6월 21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김여진을 인터뷰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올 연초부터 지금까지 반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김여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별로 뜨지 않은' 엔터테이너에서 '가장 강력한' 소셜테이너로 대중과 역동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문제, 반값 등록금 정책, 한진중공업 사태 등에서 보듯이 그가 관심을 가지기만 하면 그 사안은 폭발적인 정치·사회적 이슈가 됐다. 그 놀라운 영향력의 비밀이 궁금했다.

관심과 주목을 받으면 그 인물은 재평가된다. 그 역시 그런 과정을 겪고 있다. 학생운동에 뛰어든 계기와 그걸 내려놓은 사연, 연예계에 데뷔한 과정 등 그가 소셜테이너로 나선 배경이 알려졌다. '마음이 아름다운 배우' '개념 있는 배우'라는 찬사와 '폴리테이너' '미친년'이라는 비하가 오갔다. 어떤 인물이든 주목을 받고 영향력을 가지면 으레 겪게 되는 현상쯤으로 가볍게 보았다.

그게 잘못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잘못된 기대를 가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인터뷰를 하면서 그에 대한 기대는 번번이 배반당했다. 이를테면 무거운 줄 알았는데 가벼웠고, 가벼운 줄 알았는데 무거웠다. 말이 되지 않는 얘기처럼 들리지만 이 역시 말이 되니 기막힐 노릇이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분들과 함께 한 뒤부터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질풍노도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저도 어리둥절하고 다른 분들도 아마 어리둥절하실 거예요.(웃음)"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다. 그다지 별난 얘기가 아닌데도 튀게 느껴지는 까닭이 뭘까. 갑자기 스스로를 객관화시킨 어법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소감이 어떻습니까.

"어…(잠깐 생각한 뒤) 다른 인생을 살게 된 것 같아요. 제 인생의 축이 바뀐 거죠. 의도를 하거나 어떤 대단한 뜻이 있어서 그렇게 된 건 아니고요. 한 걸음 한 걸음, 조금씩 조금씩 그 다음 발걸음을 가고 있는 거예요."

그는 지금의 사회참여가 4년 전 JTS(Join

Together Society)라는 구호단체 활동에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JTS 활동을 하다 보니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래서 홍익대 청소노동자 문제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또 그 때문에 대학 문제를 들을 기회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등록금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한 걸음씩 가다 보니 예까지 왔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날 기회가 생겼어요. 여기저기서 요청도 많고 와달라는 분도 많고 강연해 달라, 만나보자는 곳이 있었죠. 제 힘 닿는 데까지 만났거든요. 거기서 들은 얘기를 MBC 〈100분토론〉에서 하게 됐고, 저도 깜짝 놀랄 만큼 반향이 있었어요. 반값 등록금 1인 시위처럼 저랑 생각이 맞고 뜻이 맞고 시간이 맞으면 '예, 할게요!' 했던 거죠. 참 묘하게도 다 그런 식으로 이슈가 됐어요."

그의 소통 공간은 트위터(@yohjini)다. 트윗을 통해 사람들의 어려운 사정을 접하고, 트윗이나 리트윗(RT)으로 그 내용을 팔로어에게 전파하는 것이 그의 활동의 거의 대부분이라고 한다. 팔로어는 현재 9만여명으로 연예인 치고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은 가히 대선주자급(?)이라고 할 만하다.

"트위터에서 사람들의 호소를 듣죠. 듣다보면 가보고 싶어요. 거기가 좀 다른 지점이에요. 저는 가서 직접 들어보고 싶어요. 그렇게 가면 제가 갔다는 것 때문에 기자분들이 써주시는 거죠. 한 걸음 한 걸음 그렇게 되어온 것 같아요."

연예인으로서 그런 활동이 부담이 되거나 힘들지 않습니까.

"힘들면 못 하죠. 할 이유도 없거든요. 힘들지 않고 좋으니까 하는 거겠죠. 힘들면 또 잠시 쉬면 되는 거고… 사실은 가볍게 생각해요. 함께 해주시는 분들도 제가 그런 걸 알죠. 대단한 뜻이 있는 게 아니니까… '우리는 이걸 반드시 이루어야 하며…', 이런 게 없어요. 가볍게 그냥 놀듯이 하시죠. 그러니까 지금까지 함께 와주신 거죠."

여기서 '우리'는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라는 트위터 모임을 말한다. 김여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그의 활동을 응원하는 모임으로서, 당(黨)을 자처하는 것이 이채롭다. 홍익대 사태 때 개설되어 현재 1200여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지원 요청이 있을 텐데 일일이 다 신경 쓰기 어렵지 않습니까.

"하루에 몇백 개가 되는데 다 답해줄 수는 없죠. 어떤 기준을 갖고 하는 건 아니고, 그것도 제 마음 내키는 대로 해요. 제가 다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다 한다고 좋은 것도 아니에요. 예를 들어 홍익대 사태 때 거의 전국 학교에서 다 왔어요. 저는 거기 다 가는 것보다 홍익대 한 군데를 끝까지 해서 성과를 낸 게 더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홍익대 사태가 해결되고 난 뒤 이화여대·연세대·고려대 등 각 대학의 청소노동자 문제가 비교적 쉽게 풀렸다. 그냥, 가볍게, 내키는 대로, 놀듯이… 그는 이런 말을 즐겨 썼다. 홍익대 사태 때 그가 사용한 구호인 '웃으며, 함께, 끝까지'와도 통하는 말이다. 방식은 가볍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이어지는 말이 뒷받침해준다.

"꼭 끝까지 가서 이긴다, 이것도 아니에요. 싸움이 어떻게 끝나는지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게 더 중요해요. 저는 전 국민이 다 1인 1문제 해결을 봤으면 좋겠어요. 이 문제 갔다 저 문제 갔다, 여기 화냈다 저기 화냈다, 이러지 마시고 그 중에 제일 관심 가는 것 딱 하나 잡고 그 싸움을 끝까지 보는 거예요. 같이 싸워줄 필요도 없어요. 거기 무슨 일이 있는지 얘기를 계속하면 누군가 보게 되고 언젠가 풀려요. 그렇게 믿어요. 그렇지 않고 자꾸 매일매일의 문제에 휩싸이다 보면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고 쌓여만 있게 되죠."

정치권이나 언론도 그 점에서는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맞장구치며) 그러니까요! 그게 저는 제일 큰 문제 같아요. 정치권이나 언론도 국민이 그렇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거든요. 국민이 금세 잊어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시간만 지나면 관심에서 멀어져 끝난다고 생각하니까요."

말이 나온 김에… 요즘 정치적으로도 인기가 상당해서 내년 4월 총선에 나오면 그냥 될 거라고들 하더군요.

"(크게 웃으며) 그럴 생각 없어요."

오늘 경향신문에 우석훈씨가 '김여진 구속시키면 대통령 후보 된다'고 썼던데….

"(다시 크게 웃으며) 참 나… 아이고 어쩌나… 저는 사실 정당정치에 크게 관심 없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급진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투표가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고요…."

그는 민감한 정치 얘기를 하면서도 전혀 몸을 사리지 않았다. 당당하게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피력했다. 그는 기성 정치권을 향해 개혁을 요구하기보다 유권자의 각성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저는 투표해서 누가 당선되느냐보다 투표율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대가 지금처럼 암담해진 이유 중 하나가 투표율이에요. 정치인이라면 무조건 표가 가는 대로 움직이잖아요. 정책도 그렇고요. 20대 투표율이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반드시 어느 당이든 비슷비슷하게 20대를 위한 정책을 내놓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출발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통령 하나 뽑으면 그걸로 다 됐다고 생각해요. 그런 다음에 실망해요. 확 실망하고 저쪽으로 확 옮겨갔다가 또 실망해요. 누구든 뽑아놓고 그 다음이 더 중요하죠. 그 이후에 어떻게 하는지 시민이 감시하고 제안하고… 그런 게 아주 습관이 되어버리면 진보든 보수든 정책의 갭이 점점점 더 줄어들 거다, 점점점 더 국민이 원하는 대로 이쪽과 저쪽이 다 같이 와줄 거라는 거죠. 그런 것에 더 관심이 있어요."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군요.

"어떻게 보면 저는 이미 제 정치를 하고 있어요. 너무나 다행히도 트위터라든가 SNS가 생겼잖아요. 굳이 건물을 짓고 회의하고 할 필요가 없어요. 제가 이슈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는 아무 것도 없어요. 트위터 하나거든요. 제 트위터 팔로어가 다른 스타들처럼 많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한테 공감을 가지는 힘이 되잖아요. 그건 저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얘기죠. 스타가 아니어도, 유명인이 아니어도 된다는 거죠."

정당으로부터 러브콜이 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국회에 가면 국회의원 한 사람인 건데 그렇게 해서 할 수 있는 활동보다 지금 제가 하는 방식이 훨씬 힘을 발휘할 거라고 봐요. 나중에 몰라요. 정~ 하다 안 되면 제가 당을 만들 수는 있어요. 날라리 외부세력당….(웃음)"

소셜테이너로 활동하면서 현 정권이나 특정 당을 지지 또는 비판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당이어서 비판한 적도, 지지한 적도 없어요. 늘 변해요. 생각도 변하고, 정책도 변하고, 사람에 대해서도 어떤 때는 싫어도 찍을 때가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정파적으로 보지 않습니까.

"의견이 분분하죠.(웃음) 민주당이다, 친노다, 친노 아니다에서부터 민노당, 진보신당까지…. 제가 암만 아니라고 해봐야 안 믿을 것이기 때문에 싸우실 분들끼리 싸우게 두면 되죠.(웃음) 저는 그 어느 당도 100% 찬성하지 않아요. 다 허점이 있고 마음에 안 드는 점도 있고 또 훌륭한 점도 있고요."

연예인이 정치적 입장을 밝히거나 사회적인 활동을 하는 데 대해 요즘 여러 이야기가 있잖습니까.

"솔직하게 딱 까놓고 자기 맘에 드냐, 안 드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그냥 한 마디로 너 왜 내 맘에 안 드는 얘기 하니, 그거죠. 그건 그 사람 마음이기 때문에 신경 안 써요. 칭찬을 하는 것도 사실은 그닥 달갑지는 않거든요. 자기 마음에 드는 얘기를 했나 보죠.(웃음) 연예인도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이고 당연히 자기 의견을 얘기할 수 있다고 봐요. 지금처럼 특히나 이렇게 SNS가 발달하고 그게 손 안에 있고 그걸 써서 자기 얘기를 하는 건데 뭐라고 하실 거면 하라고 하죠.(웃음)"

기대를 배반한, 아니 예상을 뛰어넘은 '개념 배우'의 또 하나 배반은 외모였다. 화면에서 접한 그의 얼굴은 미색보다 개성미가 물씬 풍기는 것이었다. '실물'은 정반대처럼 보였다. 바비인형처럼 찍어낸 듯한 서구형 미인의 얼굴에 익숙해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와는 거리가 먼 동양적 미색이 화면 밖에서는 훨씬 강하게 느껴졌다.

실물이 더 예쁘다, 화면발을 잘 받는다는 말 중에 어떤 게 더 마음에 듭니까.

"저는 100% 실물이 더 낫다는 얘기를 들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화면이 참 이쁘게 나온다는 말을 들어보고 싶죠.(웃음) 왜냐하면 그걸로 밥먹고 사니까… 그렇다고 어머, 화면보다 좀 그러시네, 그러면 그것도 기분 나쁘겠죠. 근데 뭐 화면이 좀 잘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치열하게 사회문제와 부딪치면서 연기자로 살아가는 걸 얼마 동안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알 게 뭐예요.(웃음) 제가 내키는 대로… 지금의 제 생각은 이래요. 저는 행복이 제 삶의 기준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타인과 사회를 모르는 척하고는 행복해지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요. 나만 행복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 분명히 마음이 불편해요. 가서 보고 아는 척하는 게 마음이 편해요. 내가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거랑 할 수 없어서 못하는 거는 다르거든요. 할 수 없어서 못 하는 건 아무 미련이 없어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가볍게 '못해요, 죄송합니다' 그러면 되는 거고… 그러니까 계속할 수밖에 없어요. 방식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기대를 배반당해 실망했는가. 그것은 놀라움을 안겨준 유쾌한 배반이었다.

<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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