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이 왜 영어를 유창하게 잘해야 하느냐"

글 정환보·사진 김정근기자 botox@kyunghyang.com 2009. 8. 1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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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가르치는 외국인' 서울대 국어교육과 파우저 교수 '쓴소리'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48·사진)는 한국 대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최초의 외국인 교수로 불린다. 지난해 9월 부교수로 임용돼 한국생활을 해온 지 꼭 1년째다.

그는 1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국민이 왜 영어를 유창하게 잘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영어 몰입교육·조기교육 열풍을 겨냥한 '쓴소리'였다.

그는 "영어를 아주 잘해야 하는 계층은 많지 않다"며 "관광·무역 등은 중국어가 더 필요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한국보다 전체적으로 영어 평균이 낮을지 몰라도 조지대·국제기독교대 등 영어로 특화된 학교에 국제파들이 몰리고, 국내파는 도쿄대·교토대 등으로 가고 있다"며 "한국은 그런 게 없다"고 비교했다.

파우저 교수는 유태계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도 'We Will'을 '뷔 빌'로 읽었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일화를 전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영어 교사로 필리핀인 박사보다 미국인 백인 저학력자를 선호하는 것은 발음 때문이라고 본다"며 "발음을 중시하는 것은 한국 특유의 '랭킹주의(서열화)'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2차대전 무렵 일본이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강요하던 랭킹주의가 왜 2000년대 한국에서 재현돼야 하는지 안타깝다"며 "영어라는 외피(外皮)보다는 속에 있는 콘텐츠가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그는 대학졸업 직후인 1983년 서울대 어학연구소에서 1년간 한글을 배우며 한국과의 인연을 맺었다. 미국에서 2년간 대학원 다닌 것을 빼면 93년까지 육군종합행정학교·KAIST·고려대 등에서 줄곧 교편을 잡았다. 당시에는 '한국어 교수'가 아닌 '영어 선생님'이었다.

그는 '한글 세계화 프로젝트'에 대해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제 교류가 늘면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짚었다. 다만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한글 세계화를 하는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국(大國)처럼 되고 싶어하는 일종의 제국주의적 발상은 아닌지" 물은 것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의 한글 도입에 대해서도 "한글을 수출했다면 한국도 그에 상응하는 문화적 수용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세종학당'을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나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같이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학당 프로젝트가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교사를 가르치는 요람이 되지 못하고, 정부 산하기관 여러 곳에서 '중구난방'식 한국어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파우저 교수는 한국 대학생들에 대해 "일본 학생들보다 교수와의 교류가 잦고 예의도 바르다"면서 "대학생들의 꿈이 너무 작아진 것은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엔 회사를 세우겠다든지 큰 차원의 사회 고민이 많았지만, 지금은 취직이 제1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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