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아이돌 "내 콤플렉스, 외모였다"

2010. 7. 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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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김어준이 만난 여자

'문화부장관설' 나도는 나경원 한나라 의원

"대통령 단점? 말이 많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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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은 품성으로 축구한다. 그의 경기를 90분간 몰입해 관전하고 나면, 그를 그로 만드는 건 결국 발재간이나 스피드 따위가 아니라는 걸 통감하곤 한다.

그는 언제나 제 임무를 제 몸의 한계까지 수행한다. 박지성을 박지성 되게 하는 건 바로 그 대목이다. 그리고 그건 재능과 무관하다. 혹자는 체력을 언급하나 그게 그저 "두 개의 폐"란 수사로 상징되는 체력 덕이라 말하고 마는 건, 김수녕의 10점 관통을 단순히 그녀의 이두박근 때문이라 말하고 마는 것 이상으로 부실하다. 이거, 타고나는 거다. 품성이라고.

희한한 방식으로, 이 땅의 보수도 그러하다.

그들 정치 행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들을 그들 되게 하는 건, 결국 이념이나 철학 따위가 아니라는 걸 절감하곤 한다. 그들 대다수는 제 이익을 제 욕망의 한계까지 추구한다. 바로 보수를 보수 되게 하는 힘이다. 이거 가치와 무관하다. 타고나는 거다. 애초 보수가 이념과 철학의 소산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나는 그리 생각한다. 하여 난 이 땅의 보수, 제 생래적 품성으로 정치한다 본다.

박지성과 차이는 박지성의 품성이 온전히 팀의 이익에 기여하는 반면, 그들의 그것은 그들 자신의 이익에 우선 복무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파이를 키운 뒤라야 분배할 몫도 있다 말한다. 일견 일리 있다. 그 파이의 일차 점유권은 항상 자신들에게 귀속되어야 마땅하단 숨은 전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들이 복지를 시혜의 관점에서 볼 수밖에 없는 건 그래서 필연이다. 제 것의 일부를, 자비롭게도, 나눠주시는 거거든. 황송하기도 하여라.

하여 내겐 보수 정치인과 인터뷰 시 원칙이 있다.

그들 주장이나 정책이 아니라 그들이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진 사람인지, 그 인간 자체를 있는 그대로, 최대한 공평하게, 그러나 냉정하게, 이해하는 데 집중하는 것. 그가 어떤 사람인지가, 곧 그의 정치니까. 한국 보수정치 역사상 가장 주목받는 외모의 여성 정치인, 나경원 역시 같은 기준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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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첫인상. 음, 80년대 대중가요 음반 마지막 트랙에서 당대 미풍양속의 임계를 수호하던 건전가요 같은, 과도하게 정돈된, 그런.

오늘은 정치인 나경원이나 차세대 주자 나경원 말고 자연인 나경원, 생물학적 여성 나경원을 만나보려 한다는 말부터 대뜸 꺼내들었다. 정치나 현안 말고. 그러니 어린 시절부터 알자. "느닷없이?"라고 반문하는 그에게 어떤 아이였는지 되물었다.

"지기 싫어하는 아이. 그렇지만 어리바리한 아이. 공부 같은 건 열심히 했는데 뭔가 실속 있게 챙기고 그러지는 못하는 아이였어요."

일상의 부박함과 생활의 잔인함에서 자유로운, 있는 집안 아이들 특유의 나이브함일까 싶어 부족함이 없어 그랬냐고 하자,

"아니에요. 제가 천성이 착한 거죠. 모르시는구나. 제가 착한 거.(웃음)"라며 나름 눙친다. 괜찮은 애드립. 이어 그 시절 공군소령으로 예편한 부친이 무에 그리 넉넉했겠냐며 원래 여유 있는 집안이었으나 그런 부친에게 시집와 매번 한 끼는 반드시 국수로 때워야 했기에 지금도 국수는 잘 안 드신다는 모친 이야기로 자신의 어린 시절 형편을 설명하는 데 제법 긴 시간을 할애한다. 현재 부친이 6개 법인 17개 학교 감사 혹은 이사 아니냐고 치받으려다 말았다. 정치인이 제 부가 야기할 수 있는 대중의 상대적 박탈감을 경계하는 건, 누구든 마찬가지니까. 그 대목에서 보수에게만 야박하게 구는 건 공평치 않으니까.

그렇다면 콤플렉스는 뭐였냐 물었다. 콤플렉스는 품성의 주요 성분이니까.

"미모의 여동생에 대한 외모 콤플렉스"라 바로 단답한다. 콤플렉스 말하는데 여유다. 이젠 아니란 소리다. 이건 파봐야 소용 안 닿겠다. 그 외엔 뭐가 있었냐.

"제가 샤이한 성격이에요, 사실은. 성격 자체는 그런데 뭔가 자꾸 나서야 하는 일 있잖아요. 그땐 공부 잘하면 반장도 하라고 그랬잖아요. 그럼 또 나가요. 성격과 상반된, 그런 충돌 속에서 힘들어했던, 그런 게 있었어요."

부모와 선생이 요구하는 역할과 배역을 저버리지 못한다는 거.

설혹 제 타고난 성정과 어긋나더라도. 이거, 인간 나경원을 읽는 첫번째 키워드. 스스로 모범적이라 표현하는, 그러나 실은 인생을 '숙제' 하는 자. 해서 연이어 물어봤다. 혹시 학창 시절 가장 큰 일탈은 뭐였냐고. 그러니까 제 욕망 좇아 기대 저버린 적 있는지.

"고등학교 때 보충수업 빼먹고 영화 보러 간 거. 딱 한 번. 빙점. 원미경 주연의.(폭소)"

큰 결정이었고 엄청 떨렸단다. 그럴 줄 알았다. 또 뭐가 있냐고 하자,

"엄마 화장품 몰래 발라보고 립스틱 발라보고…"란다. 그게 무슨 일탈이냐며, 학창 시절 이후 지금껏 가장 큰 일탈은 뭐냐니까 잠시 생각하다 답한다.

"대학교 때 남편하고 연애한 게 일탈인가…"

궤도 이탈, 단 한 번도 없었던 게라. 그렇게 대학 1학년 때 만나 결혼까지 했다.

그럼 평생 연애 딱 한 번 한 거냐고 묻자 그건 또 발끈한다. 그러나 1학년 때 만나 고시공부만 하다 스물여섯에 결혼해버렸는데 뭐가 있었겠냐고 도발해봐도 묵묵부답. 결혼은 또 왜 그리 일찍 했냐 따지자, 동생이 그해 12월 결혼 원하는데 순서 바꿔 시집은 불가하단 부친이 그럼 언니가 11월에 먼저 하라 했단다. 심각하게 재미없다. 해서 결혼 25년차면 이혼 생각 한 번 없었다면 미친 거 아니겠냐며 더 질러봤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거 생각하는 거 아니겠냐고 하다 이런 이야기 하면 또 이혼설 나온다고 마무리를 다듬는다.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있는 그대로의 그와 만나려는 내 의도와 상관없이 그가 실토하는, 혹은 적당히 해제해내는 삶에는 불안하고 불완전한 한 인간의 욕망이 도무지 드러나질 않는다.

어떤 사람이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어야 하느냐로 살아낸 이들의, 습관화된 자기방어.

안 되겠다 싶어 방향을 좀 틀었다.

어떤 남자가 매력 있냐. 그런 것도 이야기해야 하냐며 한참을 에돌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답을 못하냐고 재차 삼차 닦달하자 겨우 '장동건'이란다. 2PM 웃통은 어떠냐고 밀쳐봤다. "너무 어려서…" 어리면 어떠냐고, 수컷 아니냐며 들이대자 결국은 멋지긴 하다 답한다. 하지만 김을동 의원이 송일국 몸 만든 사진을 보여줘도 자긴 그런 게 민망하더란다.

또 한 번 틀어봤다. 좋아하는 브랜드가 뭐냐.

그냥 정장 입는단다. 자신의 미적 감수성과 취향을 반영한다고 여기는, 그래서 선호하는 브랜드가 있을 거 아니냐고 했더니 정치인 되기 전에도 정장만 입고 출근했단다. 그러면서 실은 그런 부분에 있어선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단다. 때로 멋지게 차려입고 싶은 욕구는 당연한 거 아니냐 해도, 뭔가 근사하게 이야기해야 할 거 같은데 이야기할 게 없어 스스로 너무 건조한 거 아닌가 싶단다. 그러고는 이렇게 혼잣말한다. "인생이 좀 불쌍하죠.(웃음)"

그러면서 평상복은 주로 보세고, 지난번 칸영화제 때 입은 빨간 원피스는 뉴질랜드 출장 때 10만원 주고 구매한 것이며, 200만원 정도 하는 정장도 있긴 하나 항상 세일 때만 산단다.

그 사실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묻는 건 취향인데 답하는 건 가격이요 구매방식이다. 정치인의 대중 위화감 관리치고도 이만하면 강박적. 가방과 구두와 화장품까지 밀어붙여 봤으나 되돌아오는 건 스스로도 맥 빠져 하는 답변. "취향이 없다니까…" 취향이 왜 없겠나. 봉인된 게지. 액세서리를 묻자, 늘 같은 걸 쓴단다. 그러면서 이리 해명한다.

"옛날 판사 할 때도 몸가짐은 어때야 돼, 옷차림은 어때야 돼 하는 그런 거 있었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될 거 같은 그런 거. 절제를 끊임없이 훈련받은 거 같아요."

규범에 압도된 욕망.

그럼 자신만을 위한 일상의 작은 사치가 대체 있긴 하냐니까 망설이다 먹는 거, 라며 멋쩍게 웃는다. 이쯤 되니 스스로도 민망하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사소한 욕망의 편린들만 집요하게 물었다. 처음 겪나 보다. 당황한다. 여서 멈췄다. 더는 의미 없으니. 결론? 한 마리 행복한 동물로 사는 게 장땡이라 믿는 내 기준으론, 심히, 애처롭다. 딸과 엄마와 아내와 의원, 나경원만 있다. 욕망의 주체가 없다.

2

여기서 점프했다. 오늘 목적은 정치인 나경원의 주장과 논평에 대한 야유와 논박 아니니, 그의 선택 다섯 가지만 묻기로 했다.

먼저, 정치는 왜 했냐. 아이 장애를 통해 겪은 제도의 불합리와 "왜 법에 따르지 않고 땡깡을 부릴까" 했던 약자 입장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그런데 왜 한나라당이냐. 보수정당은 엘리트 정치고 강자 정치인데. 약자에 대한 연민과 인권과 복지가 우선이라면 한나라당보다 더 적합한 정당 있는데. "보수정권이 그것을 해야지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이미 그게 정강정책인 정당 있지 않으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본 거죠. 계속 나눠주다 보면 고갈된다. 쉽게 말하면 그거죠." 그거. 전세계 보수가 의지하는 절대논리. 그래서 경제가 우선이라는. 왜 우리가 경제를 위해 살아야 하나, 경제가 우릴 위해야지. 반박하려다 말았다. 소용, 없으니까.

두번째. 정치가 워낙 당파적이라, 합리적 사고 훈련된 판사로 적응하기 힘들지 않았나.

"힘들었다. 갈등도 많았다." 때론 우리편 주장조차 낯 뜨겁지 않나. "그렇다." 그런데 왜 본인도 그랬나. 저 유명한 "주어가 없다" 논평 말이다.

"이 기회 빌려 이야기하자면, 제 설명은 그거였어요. 이명박 대통령의 말하는 습관이 말을 하다 갑자기 건너뛰고 다른 말을 잘 해요. 그러니까 그때도 어떤 생각을 하다, 스킵하고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한 거다. 그런 의미였어요."

혹시 대선이란 특수상황에서 대변인이란 임무 때문에 필사적으로 대응 논리를 개발하다 무리한 건 아닌가.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대응 논리를 억지로 개발한 게 아니고요. "

이명박 후보가 거짓말했을 수도 있잖나. 정치는 결국 지난 행보의 누적으로 심판받는다.

그래서 어떤 시점에는 과거 정리하고 일단락 지어야 하는데. 이제 이명박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좀더 객관적으로 정리할 필요 있지 않나. "글쎄. 다시 한 번 영상을 봐야겠는데. (폭소) 어쨌든 그땐 그렇게 생각했어요. 다시 한 번 보고 다시 한 번 판단해 볼게요.(웃음)"

셋째. 서울시장은 왜 나왔나.

"한번 도전해 보는 게 나한테 좋을 거라 생각했고, 당의 입장도 좋을 거라 생각했어요." 가족, 규범, 명분이 아니라 '나'한테 좋을 거 같아서란 이유, 여기서 유일하게 등장한다. 그마저 당에도 좋을 거란 토가 달리긴 했지만. 혹시 대통령 권유가 있었나. "대통령께서 권유한 건 사실이에요. 여기서 처음 하는 이야기인데…" 그럴 것 같았다.

네번째. 박근혜에게 생물학적 여성으로서의 동지의식 있나.

"꼭 그렇지는 않아요. 하지만 박근혜 대표님이 외로우실 거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다섯번째. 문화부장관설 있던데.

"괜히 하는 말이죠, 뭐. 기회가 되면 행정은 하고 싶어요."

덤 하나. 대통령의 단점은 뭐냐.

"말이 많으시잖아요.(폭소)" 어떤 의미냐.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시면 대통령이 주로 많이 말씀하시니까…(웃음)"

3

만나고 보니 나경원에 대한 진보 일반의 야박한 인상비판 중 수정할 부분, 있다.

그는 스스로 우직하단 자평과는 무관하게 당선 가능성을 기준으로 박근혜가 아니라 이명박에게 기울 만큼은 약삭빠르나, 적어도 당장의 제 이익 좇아 안면몰수 할 만큼 야비하거나 졸렬하진 않다. 우리 보수 토양에서 그 정도 품성이 어딘가.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맞붙는 자체가 쪽팔리는 게 지금 보수 주류 아니더냐. 난 그 대목에서 그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그러나 나경원은, 아직은, 기획된 아이돌이다.

자연인 나경원에도 정치적 나경원에도, 아직은, 주어가 없다. 어떤 규범에도 압도되지 않고 어떤 연출도 없이 삶 모든 문장에 주어를 새겨 넣으며 있는 그대로 살아내는 자, 얼마나 되겠는가만 그의 한계는 그 대목에서 여실하다. 여전히 숙제하는 학생, 검사받는 아이, 결재 얻는 직원. 그 대상이 부모와 선생과 법원과 정당으로 바뀌어 왔을 뿐.

나경원,이제 당신의 주어를 보여주시라.심심해, 죽겠다.

PS-

마지막으로 짐승 같은 놈 만나 이 위험하고 일방적인 '취조'에 성실하게 응대한 그에게, 감사드리는 바다. 졸라.

나경원 프로필

1963년 | 서울 출생1986년 | 서울대 법대 졸업1995년 | 사법연수원 제24기 수료·판사 임용2002년 |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특보2004년 | 제17대 국회의원2006년 | 한나라당 대변인2008년 | 제18대 국회의원

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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