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포 다리는 남자 '빳빳 강기갑'

2008. 10. 24. 16: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뉴스 쏙]

전세금 빼 선거 치러 11개월째 의원실 숙식

매일 새벽 다림질로 구김살 없는 하루 시작

휴대전화를 열면 아빠를 바라보는 11살 딸 사진이 화면에 뜬다. 대안학교를 다니는 17살 맏아들과 아빠처럼 농사꾼이 되겠다는 15살 작은아들은 그렇다쳐도, 경남 사천 '흙사랑 농장집' 6살 막둥이 근필이가 그걸 보면 '칫'하고 뾰로통해질 법도 하다. "늦둥이 보고 싶죠. '두 밤 자고 갈게' 매번 거짓말을 합니다.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미움으로 변해 요즘 전화하면 받지도 않으려 해요."

당 대표가 뭔지, 원내대표까지 겸하는 게 얼마나 바쁜 건지, 17대 대선 이후 쪼개진 당을 짊어진 아빠의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꼬맹이'가 알 리 없다. 21일 강기갑(56) 민주노동당 대표는 밤 10시가 다 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227호실에 들어왔다. 국정감사를 마치고, 저녁도 거른 채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고 '귀가'한 것이다. 쌀 소득보전 직불금 문제를 주도하며 부당수령자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227호실이지만 그의 아담한 서울집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 김포공항 쪽 전셋집 돈을 뺐다. 5천만원은 18대 총선자금에 보탰다. 집 구할 돈이 없으니, 의원실에 방을 차렸다. 헌정 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의원실 장기투숙이 벌써 11개월째다.

"먹을 게 많죠"라며 열어젖힌 냉장고엔 바닥을 드러낸 김치통, 장아찌, 고추장 통이 들어 있다. 전기밥통으로 밥을 해 먹는 그는 아침식사는 하지 않고 점심과 저녁만 밥공기 '반의 반' 정도로 소식한다. 육식도 피한다. 소파가 있을 곳에 2평 남짓한 나무 평상을 놓았고, 그 위에 가마니, 또 위에 오동나무 판, 그 위에 이불을 깔았다.

늦게까지 자료를 보고 새벽 1시 전후 잠이 들었다가, 새벽 5시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영화 <러브레터>주제곡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수녀인 누나를 따라 총각 시절 6년간 수도원 생활도 했던 그는 두 손을 모아 1시간 남짓 명상을 한다. "서민들의 고통과 눈물을 나의 눈물로 가질 수 있는지 생각하며 하루의 핵심 에너지를 모으는 시간이죠."

당직자들조차 "저 도포는 어떻게 매일 깨끗하고 빳빳할까" 궁금해하는데, 그가 새벽마다 30분간 러닝셔츠 차림으로 흰색 도포와 저고리를 다림질한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구겨진 옷 펴듯 마음을 펴는" 이 시간을 그는 소중히 여긴다. 흰색 도포는 두 벌뿐이라 소매 끝이 많이 닳았다. 한 벌을 1~2주일간 입고, 그사이 한 벌은 14살 연하인 사천 시골집 부인이 빨아서 풀까지 먹인 뒤 보내준다. 저고리는 화장실에서 그가 직접 빨기도 한다.

"양복은 결혼(1991년)할 때 처음 입었는데 그것도 지금 없어졌죠. 한복을 입으면 경거망동하지 않게 되고, 옷고름 매면서 나를 돌아볼 수도 있지요."

그의 또다른 트레이드마크인 수염은 1989년 농촌총각결혼대책위를 꾸리면서 길렀다. 한쌍이라도 결혼시키기 전까지 수염을 깎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100여쌍을 결혼시키고도 그대로 놔뒀다. 열흘에 한번 가위로 코밑만 정리한다.

"여기서 지내니 출퇴근 시간이 절약돼 좋아요. 대표가 되니 할 일도 많고 봐야 할 자료도 많거든요." 하지만 취임 3개월째를 맞는 당 대표로서 맘은 편치 않다. "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안 올라가서 안타깝죠. 내가 잘해 당에 자신감도 주고 희망도 줘야 하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일하는 사람들의 행복 발전소가 되기 위해 웃으면서 일하자는 분위기가 다시 만들어지는 건 의미 있는 변화"라고 말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한겨레 주요기사] ▶ 회장님 방은 묻지 마세요'▶ [단독] 강남성모병원 파견직 '노예 계약서'에 또 눈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차기 대통령은 이렇게 대처하라"▶ '대통령 전용기 교체' 1900억 쓸까 말까▶ '한국축구 찜 쪄먹을 녀석들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