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죽음' 천안함 수색 돕다 주검으로 돌아온 금양호 선원

인천 | 이상호 기자 2010. 4. 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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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찾지 않는 빈소..정치인들 조화만 즐비침몰 일주일 넘도록 실종 7명도 소식감감

쌍끌이 어선 금양 98호 선원인 김종평씨(55)는 이번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배에 오르지 않을 작정이었다. 길면 6개월 넘게 바다에서만 살아야 하는 선원생활은 쉰 살을 앞두고 만난 연인에게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한 쪽 다리가 불편한 것도 바다 일에 걸림돌이었다. 유일한 피붙이는 젊어서 낳은 아들뿐이다. 하지만 그 아들은 지금 없다. 첫 아내와 헤어진 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미국으로 입양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생 소원은 미국으로 가서 올해로 29살이 된 아들을 단 한번만이라도 만나는 것이었다. 아들의 미국 이름은 '앤디'. 그러나 '앤디 아버지'는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차가운 바다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금양 98호 침몰사고로 숨진 김종평씨의 빈소가 마련된 인천 송도가족사랑병원 영안실에서 8일 동거녀 이모씨가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천 | 김세구 기자

지난 1일 동료 8명과 함께 천안함 실종자 수색작업을 도운 뒤 피곤함을 무릅쓰고 조업해역으로 이동하다가 캄보디아 화물선과 충돌, 침몰했기 때문이다. 그의 시신은 사고 이튿날인 지난 3일 오전 옹진군 대청도 남서쪽 29마일 해상에서 발견됐다.

8일 김씨의 빈소가 마련된 인천 송도가족사랑병원 장례식장. 빈소에는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들이 뒤늦게 보낸 조화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적막했다. 김씨의 빈소는 6년 전부터 함께 살아온 동거녀 이모씨(56)가 홀로 지키고 있었다. 선박회사 관계자와 해경 직원들이 조문객을 맞는 일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조문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장례식장을 떠나 음식을 나르는 등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조문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일까. 일부 조문객은 영정을 배경으로 서둘러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다.

"아저씨(김씨)가 이번에 배에서 내리면 앞으로는 육지에서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했어요. 건축관련 국가자격증이 있는데 그 일을 해보고 싶다면서…. 돈 벌면 저와 함께 미국에 가서 앤디를 꼭 만나보자고 했는데…." (이씨)

이씨는 "정부나 해군에서 장례와 관련해 그동안 일절 대화가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의 지인들은 "김씨는 월 30만원짜리 사글세를 살면서도 늘 어려운 이웃을 보면 돕고 싶어했다"면서 "그런 김씨가 실종된 해군들의 작은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수색작업에 동참했는데, 세상은 너무 야박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동거녀 이씨는 아직까지 사실혼 관계가 확인되지 않아 법적인 연고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법적 연고자가 없는 김씨의 장례는 기약없이 미뤄지고 있다. 함께 사고를 당한 인도네시아인 고 람방 누르카효(35)의 빈소도 마련돼 있지만 향불만이 조문객을 맞고 있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금양호 실종선원 7명의 가족들은 이날 오전 인천항을 출발해 대청도 인근 해역에서 수색작업 현장을 둘러봤다. 그러나 실종 선원 대부분이 미혼인데다 가족들과 연락이 끊긴 사람도 적지 않아 유가족대책위는 대부분 친인척으로 구성돼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가 여론에 밀려 뒤늦게 선원들을 의사자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그들의 희생을 진심으로 인정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금양 98호 유가족대책위 이원상씨는 "침몰사고 이후 정부가 보인 모습은 실망스럽다"며 "정부는 유가족들에게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화보]함미부분 인양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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