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미FTA ISD]FTA 홍보 영상 문구는 왜 '지난 정부'에서 '노무현'으로 바뀌었나

2011. 11. 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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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이 대통령 "노무현의 주도적 역할 역사에 기록해야" 강조하는 서한 국회에 보내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 FTA,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하겠습니다."

10월 27일과 28일 양일간 공중파를 탄 '한·미 FTA 비준지원 공익광고' CF 영상에 나오는 멘트다. 기획재정부와 FTA국내대책위원회가 내놓은 광고다.

이 영상에는 "국민 여러분, 오로지 경제적 실익을 놓고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FTA를 하는 나라들은 잘 살고 하지 않는 나라들은 못 산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육성과 영상도 나온다. 이 '공익광고'가 공개되자 비판여론이 들끓었다. 한 누리꾼은 "죽음으로 몰고갈 때는 언제고 이제는 이명박의 FTA에 초석을 깔아줘서 고맙다는 것인가. 망자의 뒤에 숨어 두 번 욕보이는 짓"이라고 평했다.

< 주간경향 > 이 입수한 다른 버전의 영상(1,2)의 자막. '노무현 대통령'(3) 대신 '지난 정부'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노무현재단은 10월 28일 성명을 내 광고 중단과 사과를 요구했다. 노무현재단은 "광고만 보면 거의 절반 분량에 노 전 대통령을 등장시켜 지금 퍼주기 재협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한·미 FTA를 흡사 노 전 대통령이 지지하는 것처럼 만들었다"며 "노 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이명박 정부가 국민 여론을 무시하고 퍼주기 재협상을 한 데 대해 이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국가지도자가 그렇게 국익을 내팽개치면 안 된다'고 따끔하게 충고하셨을 사안"이라고 성명서에서 밝혔다. 10월 30일에는 윤승용·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참여정부 홍보 관련 고위직을 지낸 인사들이 청와대 앞에서 항의를 위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여러 가지 정황을 놓고 검토했다. 이게 홍보효과가 가장 클 것이라는 '감'이 있어 선택한 것이다." 신언주 FTA국내대책위원회 무역협정국내대책본부 교육홍보팀장의 말이다. 그는 '수년째 FTA 관련 홍보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교육홍보팀 회의에서 여러 안을 놓고 자체 결정한 안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팩트는 다 맞는 것이다. 다 보도된 것이고 신문에 나온 것들 아니냐"고 반론을 펴던 신 팀장은 '반발여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노대통령 살아있다면 지지했을까

'노무현 대통령'을 등장시킨 것은 처음부터 이 CF의 콘셉트였을까. 아니었다는 '정황'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기획한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은 이렇게 말했다. "이 정권에서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추진할 때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가장 금기시되는 사항이었다. 일개 부처의 과장이 그것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 만약 정말로 그랬다고 한다면 '대단한 소신'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소셜미디어 전문매체 위키트리는 "노무현이 등장하지 않은 이 CF의 다른 버전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 주간경향 > 은 해당 CF의 영상을 입수했다. 이 동영상에는 방영된 CF의 멘트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 FTA, 이명박 정부가…"가 "지난 정부에서 시작한 한·미 FTA,이번 정부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로 처리되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대신 '지난 정부'를 거론한 '콘셉트'는 이번 '한·미 FTA 비준지원 공익광고'의 다른 매체 광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행정안전부의 알림광장에 따르면 "지난 정부에서 시작한 한·미 FTA 이번 정부에서 마무리합니다!"라는 제목의 배너가 게시된 것은 지난 10월 25일. 지식경제부, 특임장관실, 농림수산식품부, 경찰청 등에는 해당 광고배너가 지금도 걸려 있다.

< 주간경향 > 이 입수한 '지난 정부' CF의 제작일은 10월 24일.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한 CF의 최종 결정일은 10월 25일이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된 기조가 들어간 '홍보'가 하나 있다. 홍보 대상은 여야 국회의원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회의원들 전원에게 발송한 서한이다. 이 대통령은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저는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를 제기하고 협상을 성공시킨 것을 높게 평가합니다. 최근 저는 한 간담회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주도한 분으로 역사에 분명히 기록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 서한을 발송한 날은 공교롭게도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된 CF가 방영된 날과 같은 날인 10월 27일이다. 즉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 서한 발송시점에 맞춰 국정홍보 CF 콘셉트를 재수정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FTA국내대책위원회 신 팀장은 "단지 두 가지 버전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러 버전 중 우리가 골라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획재정부 "우리가 회의를 거쳐 결정한 것"

노무현 대통령 FTA 홍보 CF는 10월 27일과 28일 양일간 방영된 후 현재는 중단된 상태. 현재까지 사과를 요구한 노무현재단 측에 정부가 공식적인 유감 표명 등은 전달하지 않았다. 양 전 비서관은 "정부 핵심 관계자로부터 간접적으로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그런 의도가 아니었고 (이런 결과가 초래한 것에 대해) 자신들도 난감해하고 있으며, 더 이상 방송광고를 내보낼 계획은 없다'는 반응을 들었다"고 말했다. 양 비서관은 이 '정부 핵심 관계자'가 누구라는 것은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 쪽 설명대로라면 이 광고에 '악의적인 정치공학적 셈법'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우리가 비판하는 것은 이 정부의 FTA가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FTA에 대해 그는 "타결된 후 재협상 과정에서 자동차산업의 후퇴나 개성공단 문제, 전문직 비자쿼터 등의 '성과'가 흐지부지된 것은 큰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천 전 수석은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에 철저히 국익, 즉 장사꾼의 논리로 이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며 "당시도 ISD(투자자·국가소송제도) 등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인 이익균형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했었다"고 덧붙였다.

노무현재단 측은 '이후'에 대해선 관망하는 모양새다. 양 전 비서관은 "소회가 복잡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한·미 FTA 비준을 둘러싼 정치권과 사회의 논란이 첨예한데 노대통령의 이미지만 중요하냐'는 흰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FTA 공익광고'의 공중파 방영은 중단되었지만, '자유무역협정국내대책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아직도 버젓이 해당 CF가 게시돼 있다. CF 방영을 계기로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는 참여정부 FTA와 이명박 정부의 FTA가 어떻게 다른가 논란이 벌어졌다. 보수매체들은 "현재 논란의 핵심이 되는 ISD조항 등은 참여정부 FTA에도 있었다"며 당시 국정홍보처가 내놓은 해명자료 등을 제시했다. 책임논란 등에서 만약 이 정부가 정치공학적 계산을 했다면 어느 정도 목적을 완수한 셈이다.

<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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