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스가 모닝에게 큰절하는 청와대

2008. 10. 3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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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스 쏙]

수석 비서관들 관용차 몸집 줄인지 석달째'전시행정' 말 나올라 불편 호소 못해 끙끙

강윤구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은 최근 서울 시내의 한 절에 인사차 방문했다가 민망한 경험을 했다. 정문을 지난 건물 앞에 차를 댔는데, 스님 3명이 정문 쪽에서 헐레벌떡 달려와 "언제 들어오셨냐"며 인사를 하더라는 것이다. 스님들은 검은색 중대형 세단 승용차를 예상하며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강 수석이 탄 소형차 회색 베르나를 놓친 것이다.

강 수석은 또 지난주 공식 모임 뒤 한 호텔 현관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다가 머쓱해졌다. 일행은 강 수석에게 "먼저 가시라"고 몇 번이나 권하더니, "그런데 차는 어디에…"라며 두리번거렸다. 강 수석의 차는 바로 앞에 시동을 걸고 대기 중이었다. 청와대가 지난 7월15일 에너지 절감 솔선수범 차원에서 차관급인 수석비서관들의 관용차량을 기존 2500㏄ 이상급 그랜저티지와 체어맨에서 1400㏄ 하이브리드(연료겸용)차 베르나와 1000㏄ 경차인 모닝으로 교체한 뒤, 수석들은 이런 난감한 일들을 겪고 있다.

청와대는 하이브리드차 베르나 13대를 새로 샀다. 모닝도 1대 샀다. 현재 9명의 수석 가운데 7명이 베르나를,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모닝을 이용하고 있다. 맹형규 정무수석은 잠시 베르나를 타다가 허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그랜저티지로 다시 바꿨다.

한 수석은 "베르나를 타고 호텔에 가면 벨보이들이 두번 놀란다. '뒷좌석'에서 내릴 때 놀라고, 앞에 있는 에쿠스에서 내린 사람이 베르나 앞에 와서 깍듯하게 절을 해 또 놀란다"고 말했다. 다른 수석의 운전기사는 "외부에 나가면 청와대 수석 차로 보질 않는다"며 "호텔에서도 '빨리 차 빼라'고 손짓하거나, 뒤에서 빵빵거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시행 석달을 넘기며 '적응'도 이뤄지고 있다. 182㎝의 장신인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은 처음엔 의자를 최대한 뒤로 밀어 조수석에 앉았으나, 최근엔 "이제 익숙해졌다"며 '상석'인 뒷자리를 이용한다. 수석들이 자주 찾는 광화문 일대 호텔에서는 이제 회색 베르나나 모닝이 들어서면 알아보고 정중히 경례를 붙이며 문을 열어준다고 한다.

하지만 수년간 2500㏄ 이상의 고급차를 타던 수석들에게, 소형차 이용에 따른 '신체적 불편함'과 '사회적 뻘쭘함'이 쉽게 가실 리 없다.

한 수석은 "시범적으로 해보는 건 몰라도 계속 타라는 것은 좀…"이라는 말로 에둘러 불만을 표시했다. 다른 수석은 "자전거보다는 낫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수석의 측근은 "차 안은 아침에 못 본 신문이나 각종 자료를 챙겨보는 사무실의 연장이자, 잠깐 눈을 붙일 휴식 공간이기도 하다"며 "에너지 절약도 좋지만, 불편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차가 곧 일터인 기사들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 기사는 "시내 다닐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지방에 갈 때는 힘이 많이 달린다"고 말했다. 다른 기사는 "어쩌다 한번 베르나 대신 아반떼(1600㏄)를 운행한 날이 있었는데, 승차감이나 밟는 느낌이 확 다르더라. '아반떼가 이렇게 좋은 차였구나' 절감했다"고 말했다. 수석들은 지방에 갈 때엔 가급적 그랜저를 이용한다.

하지만 청와대 안에서 "차량을 다시 바꾸자"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예산 낭비했다", "전시행정이었다" 등의 비난 여론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박재완 수석은 "고속도로 통행료도 절반만 내고 만족스럽다. 계속 타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하이브리드차로 바꾼 뒤 월 평균 1200만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관계자는 30일 "최근 유가가 떨어진 만큼 이제 차량을 바꿔줘야 한다는 의견이 간접적으로 들어오고 있다"며 "하지만 경제위기가 계속되고 있고 시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대신 내년에 1600㏄ 엘피지 하이브리드 아반떼로 교체해 한 단계 격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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