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전 임원이 밝힌 '금융당국 관리' 백태

구교형 기자 2011. 5. 27.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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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원 빚 갚아주고 검사 나오면 '접대 24시'

저축은행의 부실대출을 방조하고 대주주의 불법을 묵인해온 금융감독원 행태에 대해 저축은행 '대졸 공채 1세대'인 ㄱ씨가 입을 열었다. 부산저축은행 임직원들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전·현직 금감원 간부들이 줄줄이 구속된 데 대해 그는 "터질 것이 터졌다"고 말했다. ㄱ씨는 1980년대 후반 제2금융권에 입사해 20년 가까이 대형 저축은행에 재직하며 감사실장 등의 요직을 지낸 뒤 퇴직했다.

ㄱ씨는 지난 25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금융감독 당국의 검사 결과에 존폐가 달린 저축은행 임직원으로서 '자장면 한 그릇이라도 더 대접한다'는 생각으로 금감원 직원들을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서기관의 빚 보증을 서준 것을 계기로 감독당국 관계자들과 인연을 맺었다. 이 서기관이 주식투자를 하다 실패를 하자 빚 1000만원을 대신 갚아주면서, 금감원에 포진한 재무관료 출신 인사들을 소개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금감원 직원들에 대한 본격적 '관리'에 들어갔다. 한 번은 검사를 나와 커피 한 잔도 마시지 않는 '깐깐한' 금감원 직원의 모친상 소식을 접했다. 서울에서 300㎞ 떨어진 시골 벽지까지 차를 몰고 내려가 조의금으로 수백만원을 냈다.

모 재벌 계열의 저축은행 인수팀에서 근무할 때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인수기준인 8% 아래로 떨어졌다. '인수 불가' 의견이 우세했다. 마침 금감원 쪽 담당자가 지방에 파견 갔을 때 식사를 하며 가까워진 사람이었다. 그는 "BIS 비율을 높여달라"고 간청했다. 담당자가 9% 이상으로 수치를 올려줬고,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ㄱ씨는 친분관계를 이용해 해마다 7~10일간 진행되는 정기검사를 수월하게 마쳤다. 검사 전날에는 금감원에서 안부를 묻는 연락이 오곤 했다. 당일 오전 검사반 직원들은 은행에 와서 "자료를 빨리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점심식사는 고급 일식집으로 예약했다. 다만 금감원 내부 감찰반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음식점에 갈 때는 검사반과 따로 이동했다. 점심식사 때 술을 몇 순배 돌리고 식사 후에는 검사반 직원들을 근처 이발소로 데려갔다.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안마해주면 골아떨어지기 십상이었다. 다음날 오전에는 미리 사둔 과일 바구니를 내놓고 티타임을 했다.

자료를 달라고 하면 '아직 준비 중'이라고 답했다. 오후가 되면 호텔 사우나로 검사반 직원들을 안내했다.

"자료를 10시간 보는 것과 1시간 보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령 10시간 보면 1억원 미만 대출까지 샅샅이 보게 된다. 하지만 1시간 보면 100억원 이상 대출만 겨우 점검할 수 있다. 그래서 시간끌기를 한 것이다. 이따금 밤늦게까지 검사하겠다고 하면 금감원의 다른 동료와 금융위원회(옛 금융감독위원회) 공무원을 통해 해결했다."

그는 검사반원들에게 룸살롱 접대도 했다고 털어놨다. 인맥을 동원해 연예인을 동석시킨 적도 있다. 그는 "검사 마지막 날이 되면 검사반에서 먼저 '지적사항 좀 달라'고 했다. 그러면 지엽적 오류를 골라 몇 개 던져줬다"고 말했다. 명절에는 영광굴비 등 값비싼 선물을 돌렸다. 금감원 직원들이 자주 가는 식당에 현금 100만원을 달아놓고 필요할 때마다 가서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ㄱ씨는 최근 체포되거나 구속된 금감원 간부들과도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다고 했다. 이들에게서 대출 청탁과 친·인척 취직 민원을 받은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혈기 넘치던 시절 (저축은행 대출) 연체자 명단을 보다가, 금감원 과장 한 명이 500만원을 빌려가곤 몇 년 동안 이자 한 푼 안 낸 것을 알게 됐다. 독촉전화를 걸었더니 대뜸 '나중에 검사 나갈 때 보자'고 했다. 화가 나서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맞불을 놨다. 그랬더니 고참 직원들이 '세상 물정 모른다'며 웃었다."

< 구교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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