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빌어먹을 컵, 어떻게 할까".. 스타벅스의 종이컵 딜레마

2010. 11. 4. 18: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 커피회사 스타벅스의 주가는 2006년 봄 39.6달러를 기록한 뒤 2년여 만에 '4분의 1 토막'이 됐다. 2008년 가을 금융위기 직후엔 8달러까지 추락했다. 거의 포화상태라는 커피 시장에 맥도날드와 던킨도너츠가 본격 진출하면서 성장세가 꺾였다. 이후 주가는 2일 현재 29달러까지 올랐지만 고점을 회복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런 스타벅스의 요즘 고민은? 커피가 아니라 '컵'이다. 어떻게 커피를 더 많이 팔까보다 어떻게 일회용 컵 소비를 줄일까에 몰두해 있다고 미 월간지 '패스트 컴퍼니'가 11월호에 보도했다. 기사 제목은 '이 빌어먹을 컵을 어떻게 할 거요?(What are you going to do about this damn cup?)' 지난 몇 년간 주주총회 때마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이 들어야 했다는 질문이다.

커피 팔려면 컵부터 해결하라

시애틀의 작은 커피숍이 세계 최대 커피 회사로 성장하는 동안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커졌다. 타깃은 두 가지였다. 제3세계 저임금 커피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유통구조와 환경을 파괴하는 일회용품 사용. 여론은 눈에 보이는 일회용품에 더 민감했고, 그중에도 새하얀 바탕에 초록색 로고가 새겨진, 이제 스타벅스의 상징이 된 종이컵이 문제였다.

스타벅스는 미국 1만1000여개 매장에서 연간 30억개의 일회용 컵을 배출한다. 뜨거운 커피용 종이컵이 20억개, 찬 음료용 플라스틱 컵이 10억개다. 그러나 미국 매장 중 불과 5%,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처럼 법으로 의무화된 지역만 재활용 체계를 갖췄다. 나머지 매장의 컵은 땅에 묻힌다.

스타벅스 종이컵은 매장이 7개였던 1984년 도입된 뒤로 몇 차례 변신을 했다. 종이컵을 쥐는 손이 뜨겁지 않도록 컵에 끼워주는 '슬리브'도 종이컵 사용을 줄이려고 고안됐다. 97년 슬리브가 등장하기 전에는 종이컵 2개를 겹쳐서 커피를 담았다. 2006년 재생지가 10%쯤 섞인 종이컵을 만들기 시작했고, 2008년부터 플라스틱 컵에 폴리에틸렌 대신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폴리프로필렌을 사용했지만, 여론은 만족스러워하지 않았다. 소비자 눈에는 여전히 거리에 나뒹구는 스타벅스 컵이 보였다.

주가가 8달러대로 추락했던 2008년 10월, 슐츠 회장은 직원 1만명이 모인 연례 회의에서 "2012년까지 스타벅스 컵을 100% 재활용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커피보다 '문화'를 팔아 성공했다는 회사가 이번엔 녹색기업 '이미지'를 팔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전략이 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는 오래지 않아 확인됐다.

컵 문제를 총괄하는 짐 한나(41) 지속가능경영 담당 이사는 미 와이오밍주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환경보호 책임자 출신이다. 그는 "처음엔 환경오염 시비가 없는 마법의 친환경 물질을 찾아 컵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컵의 재료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슐츠 회장이 '100% 재활용'을 선언할 때 미국의 대다수 재활용 업체는 종이컵을 받지 않았다. 소량의 플라스틱이나 왁스로 방수 처리가 돼 있어 다른 종이와 함께 가공하기 어려워서다. 또 고객의 80%는 테이크아웃을 택한다. 손님이 들고 가버린 종이컵은 어떻게 재활용할 건가.

종이컵 정상회담

스타벅스는 일단 매장에 버려지는 컵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시애틀 본사에서 '종이컵 정상회담(Cup Summit)'이라 이름 붙인 첫 회의를 개최했다. 재활용과 관련된 업체 대표, 대학교수, 시민단체 관계자 30명이 참석했다. 웨스턴미시간 대학의 조엘 켄드릭 교수가 스타벅스 종이컵을 일반 판지와 함께 재활용하는 방법과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업체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지만 재활용도 결국 비즈니스다. 돈이 돼야 달려들고, 그러려면 충분한 물량이 확보돼야 했다. 지난 4월 2차 종이컵 정상회담에는 100여명이 초청됐다. 그중엔 던킨도너츠 맥도날드 등 경쟁업체 관계자도 다수였다. 도시마다 여러 브랜드가 함께 종이컵을 모아서 컵 재활용 산업을 창출하자는 구상이다.

스타벅스는 지난 9월 뉴욕에서 9주짜리 종이컵 재활용 실험을 시작했다. 뉴욕의 86개 매장에 분리수거함을 설치하고, 매일 밤 모아진 컵을 재활용품 수거업체가 가져가고, 인근 제지업체가 이걸로 페이퍼타월이나 복사용지를 만든다. 경제성이 확인되면 전국 각 도시로 경쟁업체들과 함께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럼 손님이 분리수거함에 넣지 않거나 매장 밖으로 가져간 종이컵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운동 단체 '애즈 유 소(As You Sow)'가 이런 컵의 회수율 목표치를 제시하라고 요구하자 스타벅스는 거부했다. 한나 이사는 "테이크아웃 컵을 다시 가져오거나 분리수거함에 넣는 것은 고객의 선택이다. 이를 예상할 방법이 없다. 현재로선 재활용 시스템 구축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신 지난 5∼6월 '베타컵 콘테스트'를 개최해 2만 달러 상금을 걸고 친환경 컵 디자인을 공모했다. 기상천외한 커피 컵들이 출품됐다. 야자수 잎 같은 천연 재료를 가공해 만드는 컵, 다 마신 뒤 주머니에 쏙 넣고 다니게 접히는 컵, 아예 다 먹어버리도록 과자로 만드는 컵….

1위는 디자인이 아니라 손님들이 스스로 종이컵을 안 쓰게 유도하는 간단한 아이디어였다. 매장 카운터 옆에 작은 칠판을 놓고 머그나 개인 텀블러를 사용하는 손님이 올 때마다 기록한다. 이렇게 종이컵을 안 쓰는 10번째 손님마다 커피를 공짜로 준다.

내가 종이컵을 안 쓰면 누군가 공짜 커피를 마시고, 그래서 종이컵 안 쓰는 사람이 늘면 나도 공짜 커피를 마실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종이컵 사용이 줄어들 거라는 원리. 최선의 재활용은 안 쓰는 것이란 이 아이디어는 스타벅스 시애틀 매장에서 지금 실험되고 있다.

미국 스타벅스가 '100% 재활용'을 위해 2년간 해온 것은 여기까지다. 매년 배출되는 30억개 일회용 컵 중 20억개 종이컵만, 그것도 매장에 버려지는 4억개(20%)에 대해서만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이제 테스트하는 중이다.

슐츠 회장은 "종이컵이 문제야? 그럼 가서 방법을 찾아" 하는 즉흥적 성격이라고 한다. 그의 명령과 2년의 노력에도 아직 마법의 묘책을 찾지 못했다. 스타벅스는 100% 재활용 달성 시한을 2015년으로 늦췄다. '커피 제국'을 만들어준 새하얀 종이컵이 이젠 발버둥쳐 넘어야 할 장애물이 됐다.

그럼 스타벅스코리아는?

스타벅스 종이컵은 세계 50개국 1만7000여개 매장에 미국 본사가 일괄적으로 공급한다. 제작 노하우를 지키고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고 한다. 한국 스타벅스도 본사가 보내오는 종이컵을 쓰고 있다.

한국 스타벅스 박찬희 사회공헌팀장은 "국내 재활용 산업은 미국보다 발달했다. 매장마다 분리수거함이 있고, 분리되지 않은 컵도 직원들이 골라내 모두 재활용 업체에 넘긴다. 방수 처리가 됐더라도 몇 가지 가공을 거쳐 재활용 된다"고 말했다.

국내 스타벅스 매장은 320여개다. 하루 평균 13만명이 커피를 주문해 연간 5000만잔가량 팔린다. 테이크아웃 비율은 약 50%. 음식을 앉아서 즐기는 좌식문화 덕에 매장 밖으로 나가는 종이컵 비율이 미국보다 낮다.

그러나 매장에서 마셔도 종이컵 대신 머그를 택하는 사람은 14%에 불과하다. 박 팀장은 "50원 컵 보증금이 있을 때는 머그 사용률이 40%에 육박했다. 2008년 규제 완화를 위해 보증금을 없앤 뒤로 종이컵 사용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goodnewspaper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