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 서민경제..실태와 해법 ④ 중소기업

입력 2010. 7. 27. 07:30 수정 2010. 7. 2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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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유학파 출신 중소기업인이 말하는 대기업의 횡포"대기업들 사상 최대 실적은 중소기업의 피눈물"대기업들, 중소기업 크지 못하도록 싹부터 잘라우리 대기업-중소기업 관계는 결국 '공멸의 구조'(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삼성과 현대차 등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는 소식에 중소기업 근무자들은 우리 피눈물의 결과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10여년 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귀국해 경기도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홍승민(48.가명) 대표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 요즘이 가장 힘들다. 직원들 월급 주기도 벅차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국내 재벌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홍 대표는 "대기업과 거래를 하면 할수록 이익을 내기 어려운 환경으로 바뀌어간다"면서 "이젠 그 기업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출장을 갔다가 우리나라 대기업 광고판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린다"면서 "반면 해외에서 대기업들의 활약상을 치켜세우는 국내 정치인들을 보면 속이 뒤집힌다"고 말했다.

◇ 대기업들의 횡포, '단가 후려치기'중소기업인들이 대기업에 증오심을 품고 있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불공정거래 관행이 꼽힌다. 홍 대표는 "그중에서도 '단가 후려치기'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거래하는 대기업에서 매년 일방적으로 몇% 삭감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단가를 낮추라고 통보한다. 이걸 그대로 따라야 하는데, 여건이 안돼 응해주지 않을 땐 주문 물량을 줄이거나 아예 거래를 끊어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이 요구하는 대로 납품 단가에 맞추려다 보면 결국 비즈니스를 못하게 되는 상황에까지 몰리게 된다"며 "결국 이 문제 때문에 문을 닫는 사업장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출범 1주년을 맞은 중소기업 애로 개선기관인 기업호민관실이 지난 1년 동안 수집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사례들을 보면 홍 대표가 한 말이 만연된 관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업호민관실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제조업과 건설업, 소프트웨어.문화.유통산업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사례가 빼곡히 정리돼 있다.

이민화 기업호민관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문제에서 전체의 40% 정도는 단가 인하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들은 하도급업체인 중소기업들이 더는 허리띠를 졸라맬 수 없을 때까지 단가 인하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단가 절감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이에 따르는 고통을 중소기업에만 전가하는 게 문제"라며 "더는 단가를 내릴 수 없는 환경에서도 무조건 단가를 내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수사관보다 더 위압적인 대기업 간부대기업 말단 간부들이 중소기업을 방문하면 영장도 없이 기밀서류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심지어 접대성 향응까지 강요하고 있다.

대기업이 하도급업체의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원가계산서를 요구하는 것은 이제 보편적인 관행으로 굳어졌다.

이 역시 단가 조정을 위한 것으로 중소기업은 최소 이윤만이 계산된 가격으로 납품을 강요받게 된다.

최근 홍 대표의 공장에도 업무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원청업체인 대기업의 담당자가 찾아와 사실상의 내부감사를 벌였다.

대기업 담당자는 마치 수사관이라도 된 양 급여 관련 서류며 회사 재무상황이 기록된 서류를 들춰봤다.

홍 대표는 "벌거벗겨진 채 기업활동을 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벤처기업이 어렵게 개발한 기술이나 특허를 대가 없이 공유하자고 요구하는 대기업들도 많다.중소기업들이 대기업에 증오심을 품게 되는 이유는 공짜로 가져간 기술이나 특허를 경쟁 중소업체에 나눠주고 단가 조정의 지렛대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또 계약서 한 장 쓰지 않고 구두로 발주하고 구두로 취소하는 관행도 참기 힘들지만 이로 인한 재고와 손실을 모두 떠안게 되는 중소기업들은 죽을 지경이다.

우수한 인력을 빼가거나 다른 대기업과의 거래를 막아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싹부터 자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홍 대표는 "이런 일들이 매일같이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근절되지 않는 '갑과 을의 문화'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대부분 '갑과 을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대기업은 갑이고 중소기업은 을이라는 문화는 이미 많이 알려진, 오랜 관행이지만 개선되지 않은 채 우리 중소기업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일부 건설업체 말단 간부들은 하청업체 대표들에게 부 회식비나 임원 상납용 비자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하청업체 대표는 "원청업체 부장급 간부가 전화를 걸어오면 골프나 술접대는 물론 돈까지 싸들고 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를 따내지 못하면 손가락을 빨아야 하는 입장에서 원청업체 간부들이 요구를 해오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응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하청업체 간부들도 대기업에 당한 만큼 또 다른 하청업체 임직원에게 접대나 상납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 외국기업과 손잡는 우량 중소기업들홍 대표는 최근 외국기업과 거래를 시작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것은 물론 너무나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 처음으로 사업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있다.

그는 점점 국내 대기업과의 거래를 줄이고 어렵더라도 해외 거래처를 뚫어 외국기업들과만 거래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지금 같은 환경이라면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죽이고, 살아남은 중소기업이 생존을 위해 외국으로 떠난다는 것은 공멸의 길"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는 기자와의 인터뷰 내내 "회사 이름은 물론, 어느 대기업과 거래하는지, 회사가 위치한 지역도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아주 작은 정보만 가지고도 언론과 인터뷰를 한 중소업체를 찾아내 보복을 가하는 것은 물론 정부기관 공무원들을 매수해 설문조사에 응한 중소기업들의 답변 내용까지 검열한다.

dkkim@yna.co.kr < 뉴스의 새 시대, 연합뉴스 Live ><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 포토 매거진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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