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공장 화학가스 누출사고 빈번"

2010. 5. 11. 15: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기획] 삼성전자 백혈병, 그 어두운 진실 ①

"기흥공장 1· 2·3 라인 낡아 누출사고 더 잦아" 증언들 잇따라

"경보음 안울리고 엔지니어들끼리 연락…노동자들은 몰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잇따라 백혈병으로 숨져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 회사 전직 엔지니어들이 " 노동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인체에 해로운 화학가스 누출사고가 빈번했고, 누출에 대비한 안전장치 관리도 허술했다"고 거듭 주장하고 나섰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설비 유지보수와 전체 공정관리 업무를 맡았던 김태원(가명) 전 삼성전자 과장은 5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화학물질이 누출되면 경보음이 울려야 하는데, 경보음이 울리지 않고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만 알고 넘어가는 화학가스 누출사고도 많았다"고 증언했다.

김 전 과장은 1998년부터 7년여 간 엔지니어로 기흥공장에서 일하다 2003년 12월 희귀병인 베게너 육아종 진단을 받고, 장기간 치료를 받아오다 지난 4월 삼성전자를 퇴사했다. 전직 삼성전자 과장급 엔지니어가 반도체 공장 내부의 화학가스 유출과 관련해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전 과장은 "엔지니어들에게는 휴대전화로 어떤 곳에서 어떤 가스가 누출되었다는 문자 메시지가 오지만, 베이(작업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누출사고가 알려지지 않았다"며 "기흥공장에서는 특히 1, 2, 3라인이 많이 낡아 누출사고가 더 많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과장이 지목한 1, 2, 3라인은 급성골수성 백혈병 등을 앓다가 숨진 이숙영, 황유미, 황민웅씨가 근무했던 곳이라 화학가스 누출과 백혈병 사이에 연관성이 더욱 주목된다.

김 전 과장은 또 "반도체소자 제조의 재료인 웨이퍼를 입히는 과정에서 알 수 없는 가스들이 다양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흄(연기) 현상이 발생한다"며 "이 작업과정에서 노동자들이 흄을 마셨고, 이것이 백혈병 발병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기흥공장에서 설비 유지보수를 맡아 10년 넘게 근무한 김상필(가명)씨는 지난달 15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재직 때 유기용제와 가스 누출 사고가 비일비재했다"며 "많을 때는 한 달에 두세 차례 사고가 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설비 엔지니어로 일한 뒤 현재 삼성전자의 다른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신동익(가명)씨의 동일한 증언도 확보했다.

김 전 과장은 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장치(인터락) 관리도 허술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생산량 경쟁을 시키기 때문에 작업 속도를 늦추는, 불필요한 인터락을 해제하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며 "노동자들의 요구에 따라 안전에 치명적인 것을 제외하고 하루 평균 70~80건의 인터락을 해제해주었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는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키면 작업을 중단하고 기계를 보수해야 하는 '유지관리보수'나 설비를 설치(셋업·set up)할 때는 안전과 직결되는 인터락을 해제하는데, 이 경우 엔지니어들이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인터락이 해제되면 독성가스인 인화수소(phoshphine) 등이 누출돼 작업실 노동자가 아니라 엔지니어들에게 오히려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증언이다.

김 전 과장은 "일단 위험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죽지 않으니까 유독가스가 배출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넘어간다"며 "찜찜하지만 내가 암에 걸릴 것이라는 생각을 못한다"고 말했다.

김 전 과장은 이번 폭로의 배경에 대해 "병이 걸린 뒤 삼성이 나를 물건 취급했다"며 "배신당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삼성은 내가 완치해 회사로 돌아와주길 바라는 태도가 아니었다"며 "숨진 황유미씨와 같은 노동자나 한 부서에서 일했던 부장, 대리, 친했던 사람들 모두 아무 보상을 못 받은 채 병상에 있는 것에 죄의식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전 과장은 "산재처리를 해달라고 했더니 삼성은 퇴사를 종용하며 조건을 달아 위로금을 제안했다"며 "위로금의 조건이 삼성을 비방하지 말 것, 민형사·행정상 소송을 하지 말 것, 재판에서 승소해도 추가로 돈을 요구하지 말 것 등 세 가지 였다"고 폭로했다.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문제를 지적해온 시민단체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엔지니어들의 잇따른 증언으로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화학가스 누출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며 "근로복지공단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업 재해를 즉각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쪽은 <한겨레>의 여러 차례 취재 요청에 "반도체 공장과 백혈병과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취재를 거부했다.

한편, 반올림은 삼성 반도체 공장 엔지니어들의 진술을 토대로 13일 '삼성 반도체 피해자 증언대회'를 연다고 밝혔다.

허재현 기자 김도성 피디 catalunia@hani.co.kr

다음은 김태원 전 삼성전자 과장과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당신은 어디서 일했나

"1996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경기도 용인시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2003년까지 설비, 공정 엔지니어로 7년간 일했다. 2003년 희귀병 진단을 받아 장기간 치료를 받아오다 지난 4월 회사를 그만뒀다."

-설비 엔지니어와 공정 엔지니어는 무슨 일을 하는가

"공정엔지니어는 반도체 공정 전체를 두루 관리하는 일을 한다. 설비 엔지니어는 설비에 대해서만 세밀하게 관리하는 일을 한다. 나는 이 두 가지 업무를 모두 거쳐 반도체 공정 전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부산물과 화학물질 반응해 연기 발생…그대로 마셔

-일반 노동자들은 어떤 환경에서 일했나

"웨이퍼(wafer·반도체소자 제조의 재료인 원모양의 판)를 가공하는 노동자들은 매우 위험한 환경에서 일한다. 웨이퍼에 입히는 가스는 굉장히 다양한데 그 종류를 다 알기 힘들 정도다. 이 때문에 어떤 부산물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웨이퍼에 묻어 있던 알 수 없는 부산물이 특정 공정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흄(연기)이 발생하는데 노동자들은 이것을 그대로 들이마신다. 숨진 황유미씨와 이숙영씨가 함께 일했던 3라인(공장) 3베이(공정)는 특히 위험하다. 이들은 디퓨전 공정 중 디캡공정(decap·'더미웨이퍼'에 묻어 있는 불순막을 걷어내는 공정)에서 일했는데 더미웨이퍼에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이 묻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더미웨이퍼는 한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전 작업자가 수십 번 활용한 것을 다시 쓰는 것이다. 어떤 물질이 어떻게 묻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고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켰는지 정확히 추측하기 어렵다. 사실상 위험한 화학반응 모두를 예상할 수 있다.

김씨는 이 질문에 답할 때 1시간가량 디캡공정이 무엇인 지 설명하면서 원소기호를 활용해 화학반응의 예를 들기도 했다. 이와 관련 또 다른 엔지니어는 고 황유미씨가 작성한 작업 노트를 보며 "(황 씨가) 장기간 염화암모늄과 같은 흄을 들이마신 것 같다"며 "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화학 반응으로) 부산물이 나오더라도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는 회사에서는 이를 묵인했다"고 주장했다.

방진복도 노동자 보호용 아니라 칩 보호용일뿐

-삼성전자는 노동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일해서 안전하다고 하는데.

=면 마스크를 쓰고 일한다. 먼지를 막는 기능만 할 뿐이다.

-그 외 다른 보호장구들은 어떤가.

=작업대(bay·베이)에서 일하는 여사원들이 보통 고무장갑을 끼고 일하는데 바쁠 때는 비닐장갑만 끼고 일하기도 한다. 방진복도 문제다. 노동자 보호용이 아니라 반도체 칩 보호용일 뿐이다. 반도체에 티끌 하나라도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방진복을 입을 뿐이다. 실질적으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진복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외국 바이어들이 공장을 찾으면 그들은 우주복과 비슷한 방진복을 입는다. 그런데 이런 방진복으로 일하면 생산량은 떨어질 것이다. 업무에 효율적이고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진복을 개발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기류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도록 설비해 두었기 때문에 호흡기를 통해서 흄을 들이마실 가능성이 없다고 하는데.

=기류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게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숨도 못 쉴 것이다. 한 베이에서 냄새가 퍼지면 대류를 타고 다른 곳으로 흘러갈 정도는 된다. 냄새가 다른 곳으로 퍼지지 못할 정도로 기압이 높은 것은 아니다.

-화학가스 노출 사고는 있었나

"사고는 비일비재했다. 1,2,3라인의 경우는 라인이 워낙 노후했다. 수도관도 부식되지 않나. 반도체공정은 산을 많이 쓰기 때문에 쉽게 부식된다. 화학물질이 노출되면 기본적으로 경보음이 울린다. 그러나 경보음이 울리지 않고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만 알고 넘어가는 노출도 많다. 엔지니어들에게는 휴대전화로 어떤 곳에서 어떤 가스가 노출되었다는 메시지가 온다. 그러나 베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회사가 전체 노동자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벤젠에 대한 논란이 있다. 2008년 산업안전공단의 역학조사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던 벤젠이 서울대 산학협력단 조사에서는 허용치(1ppm)를 초과하는 0.008~8.91ppm의 수준으로 검출됐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대기중이 아닌 시료에서 채취된 것이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하는데.

=일단 정확한 측정위치가 공개되어야 한다. 어디서 측정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또 벤젠이 시료에서 검출되었다 하더라도 그게 결국 어디로 날아가겠나. 충분히 사람이 들이마실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화학물질과 직원에게 알려주는 것 달라

-삼성전자가 대외적으로는 위험한 물질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것과 직원들에게 알려주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건 문제다."

암을 유발하는 물질 중 하나가 방사선이다.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각종 암을 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해왔다. 그러나 산업안전공단이 2007년과 2008년 실시한 두 차례 역학조사에서는 "방사선 누출이 자연 상태와 큰 차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김씨는 이에 대해 "일반적 공정에 대해서만 조사를 해 결론이 그렇게 났을 것이다"며 반박했다.

"방사선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이온 주입기이다. 이곳 주변은 납과 같은 물질로 차단되어 평상시에는 방사능 수치가 낮다. 하지만, 이곳을 관리했던 직원의 말을 들어보면, 유지관리보수(preventive maintenance·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등의 경우 작업을 중단하고 기계를 보수 점검하는 일)시에는 방사선 노출이 엄청나게 올라간다고 한다. 인터락을 해제하고 일한다는 얘기도 있다. 어디서 어떻게 재느냐가 중요하다. 이온주입기 공정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조금씩 잔병들이 많다. 고 황민웅씨도 이곳에서 일하지 않았나.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생산량 늘리려 꼭 필요하지 않은 안전장치 해제하기도

-<한겨레>와 인터뷰 한 김상필(가명)씨는 ISO 인증 데이터가 가짜라고 주장했다. 맞는 말인가.

"그렇다. ISO 9000 인증은 허술하게 이뤄졌다. 다 조작된 것이다. 인증받기 위해 당시 전략대응팀을 한 달 간 꾸렸다. 공정 업무를 하던 엔지니어 한 명도 당시 차출되었다. 만약 ISO 인증 기준대로 작업을 하면 생산량이 떨어져서 도저히 적용할 수 없다."

삼성반도체 공장 안전성 논란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이 인터락(안전장치)을 해제한 뒤 작업을 했다는 일부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한겨레>는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5라인에서 생산직 노동자로 일한 정애정씨 등을 만나 인터락 해제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들 노동자들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인터락을 해제한 뒤 일한 적이 많았다"고 일치된 주장을 했다. "생산량 경쟁을 시키기 때문에 생산량을 늘리려면 작업 속도를 늦추는 인터락을 해제하고 일할 수 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인터락을 해제하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기 때문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해왔다. 김씨도 인터락에 대해 꽤 자세하게 증언했다. 그는 다소 신중한 입장이었다.

-작업실 노동자들은 인터락 해제가 빈번했다고 주장한다.

"인터락은 종류가 수백 가지나 된다. 안전과 직결된 인터락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인터락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안전과 직결되는 인터락은 해제하지 않지만, 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인터락은 노동자들의 요구에 따라 엔지니어들이 해제해주기도 한다. 그들은 조장이 되려고 생산량을 늘리려 노력한다. 조장이 되면 월급이 많다. 설비의 경우 하루 평균 70~80건 정도 인터락을 해제해주었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또 비정상 시에 인터락을 해제하는 경우가 있다. 설비를 셋업(set up·설치)할 때나 설비 유지보수(PM) 할 때 인터락을 해제 하는데 이 경우 엔지니어들은 위험하다. 그러나 안전과 직결되는 인터락은 결코 해제하지 않는다. 삼성은 바로 이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 노동자들은 인터락 해제로 큰 위험이 없을 수 있지만, 오히려 엔지니어들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엔지니어들은 이런 위험을 잘 알면서도 인터락을 해제하면서 작업하는 이유가 이해가 잘 안된다.

"일단 위험하다는 분위기 조성이 안 돼 있다. 인화수소(phoshphine·독성 가스)가 나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죽지는 않으니까 그냥 한다. 찜찜하지만 내가 암에 걸릴 것이란 생각을 못한다. 위에서는 이상 없다고 하니까."

-삼성은 직원의 규정 위반을 감시하는 환경 전문 담당자가 따로 있다고 말한다.

"그런 담당자가 있다. 하지만, 기흥 공장의 경우 각 라인의 끝과 끝 사이가 100미터쯤 된다. 그게 여러 층이다. 환경안전 엔지니어가 모든 사원들을 붙잡고 24시간 관리할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병에 걸린 사람과 만나면 바로 회사에서 전화가 와

-병에 걸린 엔지니어들도 많은데 이들은 왜 위험을 밝히지 않는 것인가

"삼성의 회유와 압박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삼성은 산재신청을 포기하면 위로금을 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한다. 병에 걸린 사람은 일단 목숨부터 건지는 게 중요해진다. 산재 신청보다는 돈을 받아 치료를 택한다.

또 삼성은 어떻게든 관리를 한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만든다. 나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 우리 팀의 'ㄱ'부장이 암에 걸렸다. 그와 만나면 바로 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통화 내용을 적어서 인사팀에 올리라는 지시가 온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용기를 내서 폭로하겠나?"

이 진술은 <한겨레>가 입수한 다른 엔지니어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지난 95년부터 2007년까지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설비 엔지니어를 지낸 뒤 현재 삼성전자의 다른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신동익(가명)씨는 "회사에서 눈치를 주어 병원에 입원한 동료와 만나기 어렵다. 총무과 직원이 어디선가 보고 있을 것이란 압력을 늘 받는다"고 말했다.

-회사를 그만 둔 엔지니어라면 얘기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삼성은 공룡 같은 조직이다. 퇴직 후에도 협력업체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선 또 입을 닫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폭로하는 것인가?

"나도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내가 병에 걸린 뒤 삼성은 나를 물건 취급했다. 어떻게든 완치해 회사로 돌아와 주길 바라는 태도가 아니었다. 슬펐다. 또 고 황유미씨 같은 노동자들, 나와 한 부서에서 일했던 ㄱ부장, 'ㄴ'대리, 친했던 사람들 모두 아무 보상을 못 받은 채 병상에 있다. 죄의식이 들었다. 이제는 밝혀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김씨는 2003년 12월 어느 날 감기몸살 기운과 함께 옆구리가 아파 지역의 한 병원을 찾았다. 일주일간 입원해 있었는데 의사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2003년 12월 29일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김씨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조혈계 암인 베게너 육아종 진단을 받았다. 완치 가능성도 작은 희귀암이라고 들었다. 이미 폐혈증과 바이러스 질환이 겹쳐 있던 상태였다.

김씨의 삼성과의 싸움은 그의 몸이 약해진 이후부터였다. 싸움이 길어지며 더 쇠약해졌다. 그는 산재신청을 놓고 삼성과 줄다리기를 해왔던 지난 몇 년간의 과정을 꽤 오랜 시간 털어놓았다. 스스로 '삼성맨'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김씨는 회사로부터 "배신당했다"고 말했다.

산재처리 요구하자 비방 않겠다는 등 조건 걸어 위로금 제시

-삼성과 싸우지 않고 해결할 방법은 없었나?

"인사팀 관계자가 날 부르더니 명예퇴직을 권유했다. 명예퇴직을 택하지 않으면 강제로 쫓겨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말도 들었다. 구조조정은 누구나 쉽게 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거부했다. 비록 병에 걸렸지만 계속 일하고 싶었다. 회사를 나가면 살길이 막막해진다. 그렇게 몇 년을 버텼다.

그런데 삼성반도체 공장 안전성 문제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기 시작하면서 인사팀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갑자기 '도와줄 것 없느냐'고 묻기 시작하더라. 그래서 산재처리를 해달라고 말했다."

-도와주겠다고 했는데, 왜 산재처리가 안 되었나?

"산재처리를 회피하며 퇴사를 종용하며 위로금을 제안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인사팀 관계자가 서류를 갖고 왔다. 사인하라고 하더라. 그런데 이상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삼성에 대해 비방하지 말 것','민형사상, 행정상 소송을 하지 말 것','재판승소 해도 추가로 돈을 요구하지 말 것.' 세 가지였다. 며칠 생각한 뒤 '이런 경우가 어딨나 싶어' 위로금 계약서에 사인은 하지 않은 채로 그냥 퇴사했다. 배신감이 든다."

-삼성이 왜 산재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고 보나?

"2001년 무재해 기록이 깨지기 전에는 기록경쟁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노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 사업장에서 사고가 많아지면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에서는 간부들 중심으로 1년에 한 번씩 '노조 설립 방지' 지침을 담은 내용의 인사교육을 받는다."

기흥 반도체공장 6-7라인 건물 한쪽 소나무 잎 누렇게 변해

-지금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가

"삼성이 계속 나를 괴롭히며 연락하는 것이 힘들다. 난 삼성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는데 지금은 그게 무너졌다. 나를 포함해 내 주변에 아픈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이 든다. 내 주변 사람들이 이 공장에 취직한다고 하면 뜯어말리고 싶다. 아예 공장 근처에서 살지도 말라고 얘기하고 싶다. 기흥 반도체공장 6-7라인 건물 한쪽을 보면 수증기가 아닌 하얀 연기가 나온다. 산과 같은 화학물질을 빼는 곳이다. 필터를 거쳐도 100퍼센트 걸러지지 않는다. 옆의 소나무 잎이 다 누렇더라. 정부가 나서서 (삼성 반도체 공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정리=허재현 기자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공식 SNS 계정: 트위터 www.twitter.com/hanitweet/ 미투데이 http://me2day.net/hankyoreh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