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청년', 상추에게 힙합을 가르치다

2008. 8. 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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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상추가 있단다. 꽃상추, 양상추, 포기상추 등은 들어봤어도 힙합상추는 처음 듣는 말이다. 그래피티나 빠른 비트의 랩을 들려주는 힙합과 쌈채소인 상추가 대관절 무슨 관계가 있기에?

힙합상추가 무럭무럭 자란다는 화성시 봉담의 상추농장으로 가봤다. 농장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농가 벽면을 장식한 그래피티가 눈길을 끌고 농장에 울려 퍼지는 힙합음악이 시골 농장에 있는 건지 시내 어느 클럽에 와있는지 잠시 헷갈린다.

하우스에 들어서니 꽃다발 같은 상추가 가득하다. 그런데…. 농장주인이 푸근한 인상의 농부아저씨가 아니다. 뉴욕 할렘가 골목에서 봄직한 덩치 큰 청년이 상추를 돌보고 있다. 힙합청년들의 트레이드마크인 옆으로 비껴 쓴 모자와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김민중(32·라온팜 대표)씨다.

"농사도 이왕이면 재밌게 해야죠. 제가 좋아하는 힙합을 소중히 키우는 상추에게도 들려주고 싶었어요."

상추 키우는 힙합청년의 독특한 캐릭터에 전직이 궁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름대면 다 알만한 유명 가수 그룹의 매니저였단다.

"어린 나이에 연예계에서 일을 하다 보니 참 힘들었어요. 치열한 연예계 생활에 지치면 귀농한 아버지에게 가서 재충전했죠. 일찍이 아버지 농사일 도와서 그런지 농사가 낯설진 않았어요."

화려한 연예계에서 농사로 뛰어들다

연예계에 꿈을 품고 뛰어들어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이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다. 가난하고 힘든 연예계 생활에 염증을 느낀 민중씨는 귀농한 아버지를 보며 농사도 충분히 승부수가 있다고 판단하고 과감히 연예계 생활을 접었다. 그리고 2001년 한국농업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분신과도 같았던 힙합에 대한 열정은 접을 수 없었다. 그래서 농사와 힙합을 결합시키기로 했다.

"내가 즐기는 힙합을 내가 아끼는 농사와 같이 즐기고 싶었죠. 대상이 꼭 상추가 아니어도 그랬을 거예요. 농작물은 모두 생명체이기 때문에 아마 다른 작물이었어도 힙합을 들려주었을 거예요."

지금의 상추, 다솜추는 한국농업대학 다닐 때 1년 동안의 뉴질랜드 유학 시 접했던 작물이다. 무농약, 수경재배로 키우는 상추가 우리나라 웰빙 문화와도 잘 맞고 맛 또한 하얀 진액이 많고 쌉싸래한 것이 우리나라 재래상추 같아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2004년, 국내 최초로 네덜란드산 품종의 다솜추를 들여왔다.

결과는 대성공. 처음엔 높은 단가에 걱정했지만 깨끗하게 수경재배로 기른 상추를 뿌리째 포장해 제공하는 상추의 품질을 인정받아 없어서 못 팔 지경이 됐다. 지금은 서울의 롯데백화점과 GS마트 등에 판매되고 있는데 매출이 올해만 3억원이고 내년에는 농장 확장으로 연매출 5~6억원을 내다보고 있다.

DJ박스에서 상추와 교감을 나누다

민중씨의 상추 하우스 한 쪽에는 80년대 카페에서 봄 직한 DJ박스가 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일꼬?

"상추를 의인화해서 매일 우리끼리 공연을 해요. 힙합음악을 선곡해 들려주고 저랑 제 친구들이 DJ가 돼 얘기도 들려주고…. 같이 즐기는 거죠."

상추에게 하루 종일 힙합음악을 들려주고 심지어 상추농장 한 쪽에 DJ박스까지 만들어 놓고 상추에게 음악을 골라 틀어주고 얘기도 들려준다. 이렇게 하면 상추가 더 잘 클까? 과학적 근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힙합을 좋아하는 민중씨가 힙합을 틀어놓고 즐겁게 일하면 상추도 예쁘게, 크게 쑥쑥 자라는 것일 게다.

민중씨에게는 상추 말고도 소중한 것이 또 있다. 같이 상추를 돌보는 힙합 친구와 후배들이다. 민중씨 상추 농장에는 20대에서 30대의 근육질 젊은 청년들 8명이 같이 일하고 있다. 모두 귀걸이를 하고 삐딱한 모자에 선글라스를 쓴 힙합청년들이다. 그래도 보기와는 다르게 모두 열심이다. 빡빡 밀은 머리가 인상적인 27살 청년 오희준씨는 이제 상추와 완전 정이 들었단다.

"민중이 형 권유에 합류하게 됐어요. 물론 가난한 연예계 생활의 든든한 보루이기도 했지요. 그래서 처음엔 잠깐 내려와 일하다 또다시 화려한 세계로 돌아가곤 했었는데요, 지금은 이 곳 생활이 더 좋아요. 안정된 생활을 찾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농사만 짓는 게 아니다. 낮엔 상추를 돌보고 저녁엔 따로 마련해 둔 작업실에서 작사, 작곡을 하면서 힙합에 대한 열정을 계속 키워나가고 있다. 올 가을엔 힙합공연 계획도 있다.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즐겁게 일하는 민중씨의 농장 라온팜에는 그가 생각하는 농사에 대한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농업과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을 꿈꾸다

"라온은 즐거운의 순수 우리말이에요. 진정한 도농교류를 통해 농산물보다는 신뢰를 팔 수 있는 농장으로 거듭나고 도시와 농촌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즐거운 농장으로 성장하겠다는 저희 젊은 농부들의 마음을 담아낸 것이죠."

여름 물난리로 자식 같은 상추를 몽땅 잃기도 하고 이름 모를 병에 시들어가는 상추를 안타깝게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을 때도 있었지만 민중씨는 절대 농약을 쓰지 않았다. 처음 들여온 품종이기에 기초를 만들어 나간다는 마음으로 시행착오를 견디어냈다. 힙합을 좋아하기에 특유의 여유로움이 지금의 상추농장 라온팜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민중씨는 농사를 지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 경제적인 안정과 행복한 힙합과 주위의 인정까지…. 현재 민중씨가 구상중인 것은 농업과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이다. 예를 들자면 상추를 위한 방송이다.

더불어 도시 사람들에게 농장을 개방해 같이 힙합을 즐기고 농촌을 알려주는 체험 교류를 구상하고 있다.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이 국민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다시 말해 농업과 엔터테이너의 결합, 이것이야말로 관광농업의 본질이라는 생각을 민중씨는 고수하고 있다.

자유분방하지만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는 이 힙합청년들이 농촌에 몰고 올 신선한 힙합열풍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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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제휴사 / 피클뉴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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