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은 여름냉기 추적..'밀양 얼음골' 비밀 풀릴듯 말듯

2011. 12. 1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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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변희룡 교수팀, 2002년부터 온도·습도 등 관측 분석

"얼음보다 찬 공기, 열 분리로 냉기 더해" 새 가설 내

일부선 "장기관측 의미있지만 기존 학설로 설명 가능"

해발 1000m 넘는 경남 밀양 재약산의 북향 계곡엔 70m 폭으로 돌무더기('돌너덜')가 대략 800m 길이나 길게 뻗어내려 있다. 엄청난 규모의 돌너덜 지하에선 여름과 겨울이 뒤바뀌어 돌아간다. 겨울엔 온기를 뿜어내고 여름엔 냉기를 뿜어 얼음까지 얼린다. 독특한 지형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자연의 작품인 밀양 얼음골의 신비한 현상을 풀려는 과학 연구는 1960년대부터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 계속돼 왔다. 과연 봄·여름에 물을 얼리는 얼음골의 찬 바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최근 변희룡 부경대 교수(환경대기과학과) 등 연구팀이 2002년부터 틈틈이 해온 얼음골의 온도·습도 관측 결과를 분석하고 이를 설명하는 가설을 세워 국제학술지 <이론·응용 기후학>에 발표했다. 변 교수는 "얼음골 현상을 설명하려는 여러 연구와 가설이 있었지만 계절별 온도·습도 변화를 장기간에 걸쳐 추적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연구는 관측 결과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 오랜 관측으로 확인된 사실

오랜 관측은 겨울에 따뜻한 바람을 뿜어내는 온혈(해발 759m)과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냉혈(해발 400m)을 비롯해 계곡 여러 곳에 수십 대의 온·습도 측정기나 열화상 카메라 등을 설치해 이뤄졌다. 관측에선 막연하게 알려진 사실을 굳히거나 수정하는 결과가 나왔다.

냉혈 안의 얼음은 겨울에는 녹고 여름엔 언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론 냉혈의 기온은 겨울철에 더 낮았다. 그러나 여름에도 냉혈 안은 바깥이 섭씨 24도일 때 섭씨 3도를 유지할 정도로 찬 것으로 나타났다. 냉혈 아래쪽에서 흘러나오는 물도 여름에 더 차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겨울에 더 찼다. 온혈 온도는 여름에는 주변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겨울엔 바깥 기온이 영하일 때에도 따뜻한 바람을 내뿜었다.

냉혈에서 얼음은 늦봄과 초여름에 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시기에 얼음이 어는 것은 녹은 물이 이쪽으로 흘러내리기 때문"이라며 "겨울엔 흘러내리는 물 자체가 없어 얼음이 얼지 않는다"고 말했다. 냉혈 안에서 어는 고드름 중에는 간혹 아래에서 위쪽으로 자라는 것도 관찰됐는데, 그는 "이는 위에서 녹아 떨어지는 물이 아래쪽의 차가운 공기와 만나 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얼음골 현상을 연구해온 공학자인 송태호 카이스트 교수(기계공학과)는 "그동안 없었던 값진 관측자료"라며 "특히 1994년 국제열전달학회에서 내가 이론 계산만으로 얼음골의 연간 온도 변화를 예측했는데 이번 관측이 당시 예측과 거의 같게 나와 놀랐다"고 말했다.

■ '열 분리돼 찬 공기는 더 차게'

여름에 얼음이 어는 현상을 둘러싸고 그동안 연구자들 사이에선 여러 가설이 제시돼 왔다. 공기의 부피가 급히 팽창할 때 기온이 떨어진다는 단열팽창설이나, 물이 기화할 때 생긴 냉기가 얼음을 얼린다는 기화설, 열과 냉기를 저장한 암석들이 서서히 열과 냉기를 내뿜는 '재생기' 구실을 한다는 재생기설 또는 대류설 등이 그렇다.

변 교수 연구팀은 새로운 가설을 제안했다. 연구팀은 관측자료 분석과 이론 계산을 통해 "공기가 얼음보다 차면 얼음이 녹지 않은 채 승화하는데 이때 열은 위로 날아가고 무거운 찬 공기는 계곡 아래로 내려간다"며 "이 과정이 되풀이되며 찬 공기는 더 차가워져(양의 되먹임) 냉혈에선 늦봄과 초여름에 물이 어는 것"이라고 밝혔다.

■ '다른 가설로도 설명 가능' 반론도

새로운 가설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송태호 교수는 "얼음골을 단순화하면 돌너덜에 저장된 냉기와 온기가 돌너덜 사이의 지하 통로를 통해 대류를 일으키며 온혈과 냉혈로 번갈아 빠져나가는 현상"이라며 "기본 메커니즘에서 벗어나 여러 복잡한 설명을 붙이다 보니 적절하지 않은 설명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열전달 방정식만 정교하게 계산해도 복잡한 가설을 끌어들이지 않고서 여름철의 얼음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변 교수는 "기존 학설은 냉기와 온기의 흐름을 설명할 순 있지만 얼음이 어는 현상을 충분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주장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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