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쫓겨난 엘리트 백수, 7조 기업 CEO로 부활

권성희 기자 2011. 2. 1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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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권성희기자][[라이징 리더] 소셜 미디어 게임 징가의 CEO 마크 핀커스의 인생역전]

28살에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제는 70억달러(7조2000억원)로 평가 받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이 극적인 드라마의 주인공은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기업 중 하나인 징가의 공동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핀커스. 징가는 소셜 네트워크 게임업체로 최근 월스트리트의 내로라하는 펀드들이 가장 투자하고 싶어하는 회사다.

◆와튼-하버드대 출신 엘리트, 회사에선 찬밥

올해 45세인 핀커스는 이력서상으로는 전형적인 출세 코스를 밟아온 엘리트다. 1966년 2월 13일 시카고에서 태어나 펜실베이니아 대학 와튼스쿨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투자은행 라자드 프레러스에서 금융 애널리스트로 일하다 홍콩의 아시안 캐피털 파트너스라는 벤처캐피탈에서 2년간 부사장으로 지냈다.

이후 미국에 돌아와 하버드대학 MBA를 마치고 텔레-커뮤니케이션(현 AT & T 케이블)에서 사업 개발 매니저로 취직했다. 하지만 1년만에 컬럼비아 캐피탈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미디어 및 소프트웨어 신생기업 투자를 결정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컬럼비아 캐피탈에서도 1년을 버티지 못했다.

그의 나이 28살 때였다. 핀커스는 한 강연회에서 당시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나는 미국 최고의 기업에서 연달아 쫓겨났다. 나이 28살에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핀커스는 징가로 성공하고 난 뒤 자신이 젊었을 때 1년도 안 돼 미국 유수의 기업에서 쫓겨났던 것은 상사들에게 대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나는 남 밑에서 고생하며 경험을 쌓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혀 거만하다는 이미지를 주기도 했다.

◆ 월급쟁이로 정착 못해 창업의 길로

월급쟁이로 정착하지 못한 핀커스는 창업을 결정했고 29살인 1995년에 프리로더라는 인터넷 기반의 푸시기술 기업을 설립했다. 푸시기술이란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하는 정보와 사이트를 선택하면 관련 정보를 자동 전송해주는 기술을 말한다. 핀커스는 AT & T 케이블에서 인터넷 푸시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핀커스는 일단 매출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어느 정도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그는 통장에 8000달러(960만원)밖에 없었는데 이마저도 3개 인터넷주를 공매도했다(주식을 빌려 매도한 뒤 주가가 떨어지면 되사는 것) 주가가 4배로 뛰는 바람에 다 털어먹었다.

그 무렵 프리로더가 한 개인에게 3800만달러에 팔렸다. 회사 설립 7개월만이었다.프리로더는 어쨌든 인터넷 기반의 첫 푸시기술 기업이었고 이 때문에 가치를 인정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핀커스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해 1년 이상을 백수로 지내며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사귀었다. 핀커스는 이 때 경험을 살려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사업 아이디어를 대여섯 명의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투자하겠느냐고 물어보라"고 조언한다. 친구들이 투자하겠다고 하면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뜻이다. 핀커스는 이런 방식으로 징가를 설립할 때 친구들에게 투자자금을 조달 받았다.

◆두번째 회사는 IPO로 대박, 세번째 회사는 절반의 실패

핀커스는 백수로 지내다 1997년에 두번째 회사로 소프트웨어 공급업체인 서포트닷컴을 설립했다. 서포트닷컴은 2000년에 상장해 이름을 서포트소프트로 변경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포트소프트에 투자한 벤처캐피탈과 갈등이 생겨 지분을 매각하고 경영에서 손을 뗐다. 핀커스는 벤처캐피털의 젊은 직원들이 경영을 못 한다느니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고용해야 한다느니 간섭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중요 회의에 벤처캐피탈 관계자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핀커스는 "회사를 세워놓고도 결국 내가 일하고 싶었던 회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핀커스는 37살인 2003년에 세번째 회사 트라이브(Tribe)를 설립했다. 트라이브는 첫번째 소셜 네트워크 기업 중 하나였으나 실패했다. 핀커스는 2006년에 트라이브의 핵심 플랫폼을 시스코 시스템즈에 팔았다.

트라이브를 매각하고 나서 핀커스는 다시 쉬면서 사업을 구상했다. 핀커스는 텔레그래프와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앞으로 뭐하며 살 거냐고 물었다. 나는 그들에게 페이스북의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왜 경험이 많은 기술 기업가가 하찮은 일에 집착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네트워킹 수단으로 인터넷의 새로운 기회에 눈떠

핀커스는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인터넷이 서점이나 검색엔진, 포털, 공동구매 등을 뛰어넘는 새로운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소셜 네트워크 게임회사인 징가를 설립한 이유를 설명했다.

징가는 페이스북의 애플리케이션 게임업체로 출발해 현재는 여러 소셜 미디어 사이트에 게임을 제공하고 있다. 징가라는 이름은 핀커스가 기르던 불독 이름에서 따왔다. 핀커스는 개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징가 직원들은 애완동물을 데리고 출근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핀커스는 투자은행 출신답게 처음부터 이익을 내는데 관심을 뒀다. 벤처캐피탈에 손을 벌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빨리 이익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결과 징가는 설립 당해연도부터 매출을 내기 시작했다.

핀커스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 있다. "자기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으려면 이익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핀커스는 지난 2009년에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서도 이 점을 강조하다 큰 구설수에 올랐다. "나는 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스스로 조달했고 즉각 매출을 내기 위해 온갖 못된 짓도 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징가는 클릭하면 비싼 텍스트 메시징 서비스에 가입하도록 하는 방식의 광고를 게재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비난이 높아졌다. 결국 핀커스는 이 광고를 중단하고 자신의 말이 뭔가 비윤리적인 일을 했다는 뜻은 아니라고 해명해야 했다.

◆부인도 잘 나가는 인터넷기업 창업가

핀커스는 상사든, 벤처캐피탈이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위대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꿈을 거의 완성해가고 있다.

징가는 설립된지 3년밖에 안 됐지만 이미 상당한 규모의 수익을 내고 있다. 징가의 수익 모델은 게임 아이템 판매다. 이를 통해 지난해 8억5000만달러의 매출액과 4억달러의 순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징가는 수익이 안정적으로 창출되는데다 사내 유보금도 많아 증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1~2년 내에 상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유명 뮤추얼펀드와 헤지펀드, 투자은행들이 징가에 투자하려 줄을 서고 있다.

핀커스는 금융 전문가답게 자체 게임 개발에만 주력하지 않고 인수·합병(M & A)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도 관심이 많다. 징가는 지난 1월말까지 게임 개발회사를 9개 연달아 인수했다. 이에 따라 2009년에 375명이었던 직원이 최근엔 1500명으로 늘었다.

핀커스는 부인과 사이에 쌍둥이 딸을 뒀다. 부인 앨리 핀커스도 '원 킹스 레인(One Kings Lane)'이라는 홈 데코레이션 사이트의 창업자이다.

(출처:위키피디아, 뉴욕타임스, 텔레그래프, 미디어비스트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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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권성희기자 sh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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