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의 똑똑똑](13) 가수 김 C

정리 | 박경은 기자 2010. 8. 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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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나오면 음악 틀어준다 그러데.. 그래서 한 게 6년이야"

세상은 지축을 중심으로 돈다지만 김C, 그에게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돈다. 운전자가 안전벨트를 매든 말든, 그런 사소한 것까지 국가가 나서서 관리 감독하고 벌금을 매기는 일에 심한 거부감을 느낀다는 그는, 내가 보기에 극단적 자유주의자이자 개인주의자다. 그도 부정하지 않는다. 한술 더 떠 자신은 무정부주의자라는 그가 난 참 부럽다. 싫은 일은 절대 안하며, 남 눈치를 보는 법도 없이 자신의 마음과 감정에 대한 솔직함이. 그렇지만 그의 외모는 전혀 부럽지 않다. 얼마전 트위터에 자신의 외모가 나보다 우월한 걸 증명하겠다며 턱도 아닌 셀카를 찍어 올리는 일을 자행했지만 결국 팔로워들에 대한 민폐로 귀결됐다. 나? 이래봬도 서래마을 (꼬마)요정, 패셔니스타다. 그를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후 1시. 여전히 부스스한 머리에 검은 선글라스를 쓴 그는 몹시 피곤한 표정으로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김제동

"대중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참 묘해. 대중들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고 사랑받고 삶의 보람을 느끼고 살잖아. 그런데 가끔씩 느끼는 인간적 모욕감을 표현할 길이 없어. 계속 쌓아 두고 묻어두고 강박관념을 갖게 되는 거 같아. 어찌 보면 나 같은 스타일이 더 위험한 거야." 김C"몇년 전에 '착함의 정의'가 내 화두였어. 내 결론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상대에게 장단점을 기분 나쁘지 않게 바로 이야기할 수 있는 거야. 나 자신을 억누르면서 불편함을 참는 건 아니라고 봐."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너, 이 시간에 나 불러낸 게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한 거란 건 알지?"

- 하긴, 형이 이 시간에 깨 있었던 적이 별로 없긴 하지. 어쩌겠어. 그런데 뭘 이런 걸 다 켜놓고 있어?

"너 트위터 하잖아. 아이폰이랑 아이패드 함께 쓰면 최고의 궁합이야. 누리고 싶은 모든 정보를 한 손 안에서 누릴 수 있어."

- 나도 있긴 한데 집 컴퓨터 위에 올려놨어. 내가 아이패드를 어떻게 얻었는지 알아? 칠순잔치 사회보러 갔는데 선물로 주시더라고. 복분자는 몇번 받아봤는데…, 정말 진보적인 칠순잔치 아냐? 그나저나 어떻게 지낸 거야?

"내가 연극할 때 왔었나? 두달쯤 됐네. 그런데 너 그거 알아? 나더러 보자면 두려운 사람이 몇 있어. 그중 하나가 너야. 너랑 인터뷰하는 거 정말 싫었어. 제일 큰 이유는 너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거야. 지금껏 너와의 대화는 늘 유쾌하지 않은 상태에서만 이뤄졌어. 서로 뭔가 상처받고 아프고 괴롭고 힘들 때만 만난 거지. 전화하면서도 '제동아, 너 괜찮니' 이런 말 했던 기억밖에 없어. 너도 생각해봐. 나에게 김제동을 만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던 거야."

- 듣고 보니 그렇네. 그런 면에서 오늘은 멀쩡하고 괜찮은 상태에서의 첫 만남인 거네. 사실 형 인터뷰하러 온 거거든. 그냥 사는 이야기해 보자고. < 1박2일 > 그만두고 사람들 별로 안 만났잖아. 그건 안 물어볼 수 없어서….

"글쎄. 요 근래 1박2일 보지는 않았는데, 주변에서 이런 저런 들리는 이야기들은 있으니까…. 마음도 편치 않고 좋지는 않지. 호동이 형한테는 가끔 문자해. '덥네요' 이런 식으로. 작가들한테도 수고 많으시다고 문자하고. 엄청 원성 듣지. 몽이한테도 힘내라고 하고."

솔직히 나 같으면 쉽지 않을 일이다. 그렇게 잘 나가는 프로그램에서 자진하차하는 것은 웬만한 결심 아니고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내가 예능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그런데 옛날 생각하니 참 웃기다. 형이랑 처음 예능을 했을 때가 < 엑스맨 > 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다. 그때 형이 투덜대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 음악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이야기도 했고, 형 스스로가 예능에서 이질적이라는 느낌을 가졌다고도 했는데,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달리 비칠 수 있어. 예능 전체를 무시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지.

"무시는 아니지. 일을 하면서 즐거움이 없었던 것은 아냐. 내가 같은 일을 6년을 했더라고. 6년이면 적응이 될법도 한데 나 스스로에게 '내가 잘 굴러가고 있는 건가' '이게 내 길이 맞나' 이런 자문자답을 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오랫동안 생각하고 마음을 먹었지. 난 내가 뭘 할 때 가장 즐거워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봤어. 그랬더니 창작적인 일, 뭔가를 만들고 있을 때 가장 즐거워해. 그래서 그런 거지 '나 절대로 예능 안해'라고 선언하는 건 아냐. 내가 대중예술하는 사람인데 대중과의 접점은 항상 있어야지. 다만 대중과 만나는 고리를 예능으로 삼겠다는 건 아니란 거야. 모르지. 먹고 살기 힘들어져 이거라도 안하면 안된다 싶은 상황이 올 때 또 다른 변명거릴 찾아낼지도…."

▲"뭔가 만들고 있을 때 난 가장 즐거워예능 완전중단은 아냐… 대중과 접점도 필요해"▲형이랑 처음 예능을 했던 건 '엑스맨'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형이 투덜거리던 모습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 김제동

- 형이 지난 봄에 낸 음반 '시소'는 원래 하던 음악에서 많이 바뀌었더라. 뭐랄까? 그전에 형이 속한 밴드 '뜨거운 감자'의 콘서트를 들을 때와는 다른, 내면의 변화가 있었다는 느낌이 왔어.

"지금까지 뜨거운감자라는 밴드가 음악을 했다면, 시소는 그 밴드에 속한 개인 김C의 생각과 콘셉트가 많이 작용한 거야. 살면서 한번씩 내 머릿속에 있던 뭔가를 달리 표현해보고 싶을 때가 있잖아."

- 아, 복잡해. 그러니까 밴드로서의 음악, 개인으로서의 음악. 차이는 분명히 있다는 거지?

"그렇지. 밴드를 하려면 내가 하고 싶은 것 중 일부만 내놔야 해. 전체를 위해 더 많이 배려하고 조화로워져야지. 접점을 찾는 게 중요해. 내 역할을 넘지 않게 충실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되지 않으면 밴드 '뜨거운 감자'가 아니라 '김씨와 뜨거운 감자'가 되는 거지."

- 요즘 예능과 음악 프로그램에 얽힌 뒷얘기들이 많이 나오잖아. 형에게, 그러니까 뜨거운감자의 음악을 알리기 위해 예능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거야?

"당연히 처음엔 그걸로 시작했지. 우리 음악이 라디오에 나왔으면 좋겠다 했는데 예능에 출연하면 틀어준대. 그럼 출연해야지. 뮤직비디오도 그렇고. 그런 식으로 했던 건데, 재미없을 것 같은 내가 방송에서 몇마디 한 게 재미있다네. 그러면서 6년을 한 거야."

- 일부에선 음악으로 승부보고 싶은 사람이라면서 예능하고, 그 예능 덕에 음악이 알려졌으니 그만두는 거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어.

"난 아티스트의 덕목 중 하나는 이기적인 것이라고 생각해. 아침에 아이가 학교 가는 것을 못 보더라도 난 자야 돼. 내 라이프사이클이 중요한 거야. 대신 나는 음악을 만들어 불특정 다수의 감성을 울려야 하는 본질이 있지. 난 이기적이야."

- 그나저나 이번이 첫 전국투어지, 어때?

"해보고 싶었던 건데 가능하게 돼 정말 기뻐. 작은 규모지만 다음 목표를 위한 첫번째 중요한 일 중 하나지. 다음엔 다른 나라에 가서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을 것 같아. 공연하면서 우리 밴드가 사람들에게 많이 다가갔다는 것을 확실히 느껴. 그전엔 우리 음악을 이해시키기 어려웠는데 지금은 수월해졌어. 이번에 인천에서 록페스티벌 했을 때도 뜨거운감자가 최대 관객을 모았다는 것은 굉장한 거 아냐?"

저런 모습. 난 저래서 형의 성격이 부러울 때가 많다. 누가 맞고 틀린 건 아니지만 난 종종 내 감정을 이겨가면서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착한 척 해야 할 것 같은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그러면서도 가끔 못 참고 울컥했다가 집에 와서 베갯잇을 붙잡고 밤새도록 끙끙대며 힘들어한다. 이러니 내가 담배를 못 끊는다. 그런데 하루에 두갑반씩 피우던 저 형은 도대체 어떻게 담배를 끊은 걸까.

"끊은 게 아니라 참고 있는 거야. 어쩔 수 없는 목적의식 때문에 담배를 잠시 참는 거지."

- 무슨 목적의식?

"아이가 태어나기 전이었어. 누군가 담배피우고 들어오는데 냄새가 확 나는 거야. 갑자기 깨달았어. 내게도 저런 냄새가 늘 나고 있겠구나. 곧 아이가 태어날텐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 그래서 참기 시작했어. 그렇지만 2013년 8월1일이 되면 다시 피울 거야. 그때 아이가 10살이 되거든. 그때는 잘 설득하면 담배 피우는 일에 대해 합의해 줄 것 같아."

- 딸이 싫다면?

"음…. 잘 설명해 봐야지."

흐흐흐. 저건 내가 아는 김C형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나보다. 벌써부터 딸 생각하면서 눈치보는 모습이라니. 난 여자친구가 끊으라고 하면 당장 끊을 수 있을텐데….

▲"내 음악에 대해 당당… 대중만 좇고싶진 않아남과 다르다는 뜻에서 건방지다는 말 좋아"▲그는 극단적 자유주의자이자 개인주의자다. 남 눈치를 보는 대신 자신에게 솔직한 그가 난 참 부럽다. 물론 외모는 전혀… - 김제동

"넌 나름의 도랑이 생긴 거야. 물이 떨어지면 어디로 흘러갈지 아는 거지. 사람에게 그게 생기면 피곤해. 제동이 넌 늘 착하고 따뜻하고 기부 잘하는 사람, 난 늘 불평하고 투덜대고 오만방자하고 버릇없는 사람. 이게 각인돼 버린 거지. 그래서 나는 편해. 내가 뭘 해도 제재나 뒷말이 없지."

- 형은 어려서부터 그랬던 거야?

"건방지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 건방진 거랑 당당한 거는 비슷한 것 같아. 비슷하게 쓰이는 말 중 싸가지 없다는 건 다른 말이지. 어쨌든 난 건방지다는 말을 남과 다르다는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좋아했어."

- 획일화에 대한 거부감이 정말 강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하는지 의심스러워.

"획일, 권위, 이런 단어는 어릴 때부터 강하게 거부했어. 난 도덕이란 과목이 왜 있는지 이해가 안돼. 할머니가 무거운 물건을 들고 계시면 도와드려야 하고, 노인이 버스에 타면 자리를 양보해줘야 한다는 것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나라가 어디 있냐고.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그렇게 획일적으로 교육시키려는 게 싫어. 공공을 위해 해야 하는 것, 해서는 안되는 것들은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잘 알아야 하는 것 아냐?"

- 획일을 거부하는 모습이 대중에겐 어떻게 비칠까? 형은 사인이나 사진 찍자는 요구에 잘 응하질 않잖아.

"앞서 말했지만 난 참 이기적인 사람이야. 내가 내키면 하고 아니면 안해. 어떤 공간에서든 상대로부터 존중받는다고 느끼면 최선을 다하지. 난 나의 자존감을 굉장히 중요시해. 내가 만드는 작품에 대한 당당함과 자부심이 있거든. 그래서 내 작품에 대한 비판에는 언제든 정당하게 맞설 준비가 돼있어. 요즘 선진국되겠다고 발버둥들을 치잖아.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나름의 선진국에서 대중아티스트들은 정말 존중받아. 이런 어려운 시대에 감성적으로 위안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박수받아야 할 사람들 아닌가? 연주, 노래, 연기, 개그 등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자기 고통을 갉아 먹으면서 창작한 산물이야. 난 내 작품에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는데 그게 인기를 못 끌 때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어.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뭘 좋아할까 고민하며 좇아가는 식의 본질을 비트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웃길까 하는 게 끊임없는 고민거리다. 프로그램이 잘 안되면 누구의 잘못도 아닌 내 잘못이라는 자책감이 들면서 철저하게 우울해진다.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형과 나는 서로 먼 별에서 왔다는 점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나를 지금까지 오게 한 것은 '자뻑'이 대부분이야. 예전에 술자리에서 음악평론가와 붙은 적이 있는데 결국 그가 주장하는 것이 나를 납득시키지 못하더군. 내 결론은 '당신을 위해 만든 것 아니니 드시던 술이나 계속 드시라'고 했지."

- 그러고 나면 죄책감이나 두려움 같은 느낌 들지 않아?

"물론 가끔씩 '너무 재수없게 보였나'하는 죄책감도 들긴 해. 그렇지만 난 오만하고 이기적인 직업군에 있는 사람이야. 이래도 된다고 생각해."

< 정리 |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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