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의 똑똑똑](10) 배우 고현정

정리 | 박경은 기자 2010. 6. 23. 17:5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연예인은 광대, 대중은 귀족.. 가십 없다면 직무유기"

배우 고현정. 대중에겐 거침없고 강렬한 '포스'의 소유자로 각인돼 있다. '만인의 연인'이라는 진부한 이미지보다 '불가침의 여신'으로 상대를 항복케 하는 힘이 있다. 그랬다. 적어도 직접 만나기 전까지 나에게 그는 '여신(女神)'이었다. 한때 '송윤아'가 그랬듯이. 그런데 이 '누나', 내가 잘못봤다. 지난 겨울 나보다 세 살 많은 그를 술자리서 만난 건 트라우마를 남긴 일종의 사건이었다. "TV에서 보는 것과는 딴판이네"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연예계 '잔밥'깨나 먹은 나로서도 감당하기 힘들었으니까. 그날 이후 '여신'은 높고 고매한 자리에서 내려와 넘치는 푼수기에 술 마시고 진상 떠는 '동네누나'로 내 곁에 있다.형수가 돼버린 송윤아씨보다, 예쁜 동네누나가 훨씬 실속이 있지 않은가.

고현정은 "홍상수 감독님이 이런 말을 했어. 미안하면 미안하다, 고마우면 고맙다는 표현은 그때그때 안하면 나중에 내가 제일 외롭고 후회스럽다고. 얼마전 팬미팅을 한 것도 20년 이상 가없이 받은 사랑에 대한 내 방식의 표현인데 너무 늦게 한 것 같아"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 팬미팅도 잘 끝났잖아요. 역시 누나는 여신의 포스가 있어. 하지만 아쉬워요. 진솔하고 가식없는 자리였다지만 아직도 대중들은 누나의 실체를 모르잖아.

"내가 푼수라는 걸 전 국민이 다 알 필요는 없잖아.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내가 푼수가 되면 상대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거든."

- 상당한 배려가 배어 있는 것 같은데? 누나 은근히 멋있는 것 같아요."나 상당히 괜찮다니까. 그러니까 우리 결혼하자."- 싫어. 난 솔직히 누나 같은 스타일은 별로예요."조금만 더 생각해봐. 네 인생에 이런 '딜'이 없어. 우리가 만나서 술만 마셔서 그래. 네가 못 본 나의 모습이 있어. 아주 매력적인…."

- 됐어. 누나한테 감정 없어."하긴, 감정이 있기에 자기는 너무 '안전하게' 생겼잖아. 주변에 여자들도 다 그렇게 느낄 거야. 너랑 청계산 다니는 여자애들도…."

▲ '여신' 아닌 '푼수'가 내 실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황당한 몰카' 장난치는 건 그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서▲ 가끔씩 누나에게 짠한 슬픔이 내비친다. 신비주의 포장을 스스로 벗겨버린 것은 '슬픔'을 지워버리기 위해서 아닐까 - 김제동

지난 겨울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누군가 불러서 나간 술자리 동석자들은 이미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자리에 앉는 순간 '여신 고현정'이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쟨 또 누가 불렀니? 이래서 내가 개그맨이랑 가수 따윈 안만나는 거야"라면서 신경질을 부리고 휙 나가버리는 거였다. 내가 얼마나 '뻘쭘'하고 어색했겠는가. 한참 지난 뒤 누나가 웃으면서 들어왔다. 내가 '몰카'에 당한거라나. 헉.

- 그때 누나 연기가 이경규형 뺨치더군. 몰카가 재밌어요?"세상에서 젤 재밌어. 이런 상황을 만들면 저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게 너무 궁금해. 그래서 장롱 속에 숨어 있었던 적도 있어. 아줌마든, 매니저든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게 재미있잖아. 영화 <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찍을 때도 그랬고. 내가 김태우랑 짜고 현장 스태프들 다 울렸거든."

- 그런 장난치면 쾌감이 느껴져?"너무 느껴지지. 미치겠어. 그런데 항상 다들 즐거워하던 걸? 무료한 일상에 기쁨을 줘서 고맙다고. 난 어찌됐든 누군가에게 산타클로스 같은 기쁨을 주고 싶어."

- 그게 왜 그렇게 좋은 거예요?"기쁨이지.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의 불필요한 절차를 없앨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할까?"- 철학이 있네."뭘 해도 철학이 있는 거야. 난 미스코리아 나간 것도 철학이 있었어. 그게 되면 외교관, 그러니까 민간 외교관이 되는 줄 알았거든. 전 세계를 돌면서 '미의 사절'로 국위를 선양할 수 있다고 해서…."

- 누나 매니저들이 골치아파 하지 않아요?"싫어하지. 내가 조절이 잘 안되니까. 묻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막 이야기하고…."지난해 미실로 전국을 호령했던 누나는 다음달부터 새 드라마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번엔 박인권 화백의 만화 < 대물 > 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에서 여자 대통령 역할을 맡는단다. 갈수록 태산이다.

"나도 좀 웃기기도 하고 가늠도 안돼. 한편으론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절박함도 느끼고 있지. 이 드라마를 잘 찍어서 내가 혹시 알아? 나중에 정치에 뜻이 생겨서 정치인이 됐을 때 써먹을 정도로 잘 찍어야 하는 건지…. 코미디로 풀어가야 하는 건지, 한 여자의 우여곡절 인생론으로 끝내야 하는지 뭐 그런 거지. 개인적인 바람은 대한민국이 반도이고 또 반쪽이 잘려 있잖아. 그 한쪽 서울에 살고 있는 어떤 여자가 겪는 '별별 이야기' 정도였으면 좋겠어."

- 미실이 워낙 카리스마 있는 역할이어서 후유증이 오래 갔겠네?"난 사실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데 오래 걸린다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는데 이번엔 좀 알겠어. 덕만이가 했던 대사 중에서 '나에게는 미실이라는 적이 있어서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당신에겐 그런 적이 없으니까 잘될 수가 없다'던 말이 있었어. 그 말을 듣고 있을 때 어찌 그리 슬프던지…."

- 살면서 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식되는 사람 있는 것도 나를 위해서 좋은 것 같아요. 누난 그런 사람 있어?

"프랑스 대통령 부인, 브루니. 모델이었잖아. 영부인이면서도 지금도 잡지를 만들고 우디 앨런이랑 영화도 찍더라. 멋지지 않아? 자꾸 의식하게 되던데?

- 난 브루니보다 누나가 나은 것 같은데…."영리한 여자인 것 같아. 게으르지도 않고. 누구의 아내로, 타자의 눈에 비쳐진 자기 모습만 체크하면서 아름답고 스타일리시한 영부인으로 남을 수도 있잖아. 그런데도 불구하고 책도 쓰고, 결혼에 대한 시니컬한 인터뷰를 하면서 자기 생각도 다 표현하면서 살고, 음…. 또 불어를 하잖아. 부러워.

- 누난 한국어 잘하잖아"그렇지. 부모님이 많이 투자해주셨어. 한글 조기교육도 받았거든."

▲ "내 고집과 변덕 다 받아주는 아내 같은 남자 만나고 싶어대중의 사랑 이만큼 받고 일하면서 돈도 벌어 감사…"▲ 누나 이야기 듣다보면 득도한 사람 같다. 가끔 황당하지만, 그의 보석같은 통찰력과 조언은 천군만마 같다 - 김제동

난 누나랑 술 마실 때가 참 좋다. 누나가 너무 웃겨서 내 본분을 잊는다. 나는 그저 누나 이야기를 들으며 낄낄대며 술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가끔씩 누나의 뒤에 짠한 슬픔이 내비친다. 끝없이 자유를 갈망하는 갈매기를 닮았다. 대중들의 로망인 여배우가 신비주의를 버리고 대중이 씌워놓은 포장을 스스로 벗겨버린 것도 '슬픔'을 지워버리기 위한 것 아닐까.

"왜 내가 안돼 보이냐면 빈 맥주깡통이 차오르는데 버려 줄 남자가 없어서야."- 비담 같은 남자가 있어야 하나?"비담까지도 안 바라. 칠숙이 편해. 칠숙."- 연애 안해요?"왜 안하고 싶겠어. 그런데 냉정히 말해 나에겐 아내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해. 내가 아내가 될 자질이나 소양은 부족한 것 같아. 나의 변덕스러움과 고집스러움, 말도 안되는 논리를 아내의 마음으로 항상 응원해주는 사람말야. 그리고 내가 말하는 결혼의 의미는 같은 방을 쓴다는 것보다는 기업합병에 가까운 의미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내 편, 동지가 돼 주는 거지. 돈은 내가 벌 수 있으니까 돈 벌어야 할 책임감은 안가져도 돼. 얼마나 좋아? 그러니 김제동, 다시 한번 생각해봐."

- 누나는 왜 결혼하자는 말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재미있잖아. 내가 결혼하자고 말하면 애들이 완전 놀라지. 순수해서 그런 건데 그런 반응 보면 재미있어."

누나는 정말 호기심이 많다. 궁금한 건 거침없이 물어본다. 학교다닐 때 워낙 키가 커서 학교앞 문방구에서 체육복을 못 사 입었던 그 시절부터 획일화에 대한 반감을 키워왔다고 했다. "반골기질이 있다"고 했더니 "남들이 그러대"라고 무심하게 대답한다. 그게 고현정의 쿨한 매력이다.

- 사실 나는 그게 아닌데 사람들이 나를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 말예요. 그게 나를 옥죌 때가 있어요. 정말 싫어요.

"그게 답답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 것, 그게 다 내가 한 일이고 나에게서 나온 거야. 내가 한 행동에 대해 그들이 판단하는 건 그들의 자유야. 남들의 생각까지 내 의도대로 맞추겠다고 하는 것은 또 다른 권력욕이지. 내가 주장한 건 핑크였는데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은 검정이 될 때가 있지. 그 간극을 줄이겠다고 나서는 것은 잔류형 인간이야."

- 연예인들은 그런 간극이 큰 것 같아. 그래서 '가십'이 많은지도 모르겠어요."난 연예인이 '가십' 없는 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해. 연예인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라고 있는 존재들이야. 우리를 보면서 사람들은 위로와 재미를 얻는 거야. 삶의 지표나 방향을 잡으라고 있는 존재가 아니지. 연예인에게 '가십'이 없다? 그리고 그 '가십'을 봉쇄해버린다? 그건 연예인으로선 직무유기야. 우리가 성녀처럼, 대통령처럼 취급받고 싶어한다면 그건 정신병자야. 연예인은 무대에 선 광대고, 객석에 앉은 대중은 귀족이지. 우린 돈과 시간을 투자한 관객들을 어루만지고 즐거움을 줘서 보내야 하는 거야. 난 어떤 질타나 비판을 받는다고 힘들어하는 후배들 보면 막 야단쳐. 누릴 것 다 누려놓고 몇 분의 일도 안되는 질타를 갖고 사네 못사네, 힘들어 죽겠네…. 그렇게 완벽하고 싶으면 아예 숨어 살아야지. 질타도 관심이거든. 견뎌야지."

누나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득도(得道)한 사람 같다. 그래서 누나의 방식은 나의 고민과 문제를 푸는 데도 효과적이고 유효하다. 못말리는 푼수기 때문에 간혹 황당하기도 하지만, 그의 보석 같은 통찰력과 조언은 천군만마일 때가 많다.

- 민감하긴 한데, 아이들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하기 힘들 것 같아요?"그건 그 아이들 몫이야. 부러울 것 없는 집안에서 건강하게 태어났고 부족함 없이 잘 자라고 있잖아. 단 한 가지. 엄마가 가까이서 키워주지 못한다는 결핍이 있는 거지. 그런데 그건 그 아이들 운명이잖아. 훨씬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난 그 아이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엄살을 안 떨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나 역시 나중에 아이들을 만나더라도 '아이고 내 새끼야' 이러면서 울고불고 하지는 않을 거야. 어떻게 지냈는지, 관심사와 고민거리는 뭔지 쿨하게 물어보겠다는 마음이 들어. 애들보다 난 부모님에게 더 죄송한 마음이 들어. 결혼해서 애낳고 해로하는 것을 정상이라고 알고 계신 분들 앞에서 난 이상한 짓을 한 거잖아.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부모님은 그것에 대해 죄의식 같은 것을 갖고 계시는 것 같아."

- 부모님 마음은 다 그런 것 같아요. 그것 말고는 아쉬운 거나 더 원하는 건 없고?"없어. 대중들의 사랑도 이만큼 받고 있고 열심히 일하면서 돈도 벌고. 감사하지. 특별히 누가 밉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꽂혀서 그 사람 이야기만 하는 상태도 아니고. 그런데 우리 너무 대단하지 않아? 맨정신에 이렇게 오랫동안 긴 이야기를 나누다니…."

< 정리 |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출시-ⓒ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