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쇼이 발레의 요람 '발레학교'

2010. 10. 8. 08: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0~18살에 발레 영재교육…최고 무용수 배출

(모스크바=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우리에겐 발레단보다 발레학교가 먼저 필요하다."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안무가 조지 발란신이 미국으로 건너가 발레를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한 말이다.

조지 발란신은 발레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미국에 1934년 처음으로 발레학교를 세웠고 이곳에서 양성한 무용수들로 이듬해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뉴욕시티발레단'이란 이름으로 정식 설립된 이 발레단은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발레단이 됐다.

발란신은 러시아 발레를 세계 최정상으로 만든 힘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세계 최고의 발레단으로 꼽히는 볼쇼이발레단은 1780년에 설립되고 이 발레단이 소속된 볼쇼이극장은 1776년에 창설됐다. 그러나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것이 1773년 예카테리나 2세의 지시로 만든 무용학교다.

7일(현지 시간) 방문한 러시아의 모스크바 국립무용학교(Moscow State Choreography Academy; 일명 '볼쇼이 발레학교')는 발레의 종주국이 아닌 러시아가 어떻게 발레 최강국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보여줬다.

이 학교에는 최고의 발레리나ㆍ발레리노를 꿈꾸는 학생들이 10살에 입학해 8년 동안 발레 공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차근차근 배워나간다. 이곳을 졸업할 때는 무용수로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아 18살부터 러시아 어느 발레단에서든 활동할 수 있게 된다.

한 학년 정원은 여학생 15명, 남학생 15명으로 모두 30명이며 러시아인이면 8년간 돈 한 푼 내지 않고 공짜로 교육받을 수 있다. 지방에 사는 학생이면 기숙사에도 머물 수 있고 성적이 우수하면 장학금도 받게 되며 집안 환경이 어려우면 발레에 필요한 옷과 각종 용품까지 지원받는다.

국가에서 이렇게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하며 발레학교를 운영하는 것은 철저히 수준 높은 발레단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 학교의 최대 목적은 발레극장에서 설 수 있는 무용수를 키우는 것입니다. 최고의 무용수들로 최고의 발레단을 만들려면 무용수 한 명 한 명을 최고가 되도록 교육해야 하죠."

이 학교에서 20여 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는 루드밀라 골린첸코씨는 학교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처럼 발레교육이 대학 입시나 콩쿠르 수상을 위한 목적으로 실행되는 것이 아니라 공연 그 자체를 위해 이뤄지기 때문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테크닉만 가르치지는 않는다.

"우리는 테크닉을 가르치지 않고 테크닉을 어떤 역할에서 어떻게 연기하느냐를 가르칩니다. 모든 동작 하나하나에 느낌과 감정을 넣어서 하도록 하지요. 무용수마다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을 키워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이유로 이 학교 수업에는 발레 수업만 있는 게 아니다. 실기 수업만 해도 클래식댄스를 비롯해 민속춤, 파드되(2인무), 리듬, 현대춤, 연기, 체조,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무대실습' 과목이 있고 이론 수업으로도 극장역사, 세계문학, 세계사, 예술사, 서양미술사, 철학 등 다양한 과목이 편성돼 있다. 국어, 수학, 사회, 경제, 영어, 프랑스어 등은 기본이다.

이날 학교를 방문한 한국 기자들에게는 4학년 여학생반과 3학년 남학생반, 6학년 남학생ㆍ여학생반 등에서 진행되는 4개의 수업이 공개됐다.

어린아이의 천진함이 남아있는 12살 소년부터 제법 어른티가 나는 16살 남학생까지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피아노 반주와 구령에 맞춰 기본적인 동작들을 반복해서 연습했다.

대부분 볼쇼이발레단에서 왕년에 주역무용수로 이름을 날린 교사들은 여러 동작을 직접 시범으로 보여주고 학생들에게 다가가 하나하나 동작을 교정해주기도 했다.

담임교사 1명이 보통 2년 이상 같은 학생들을 맡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 간 관계는 더없이 친밀하다고 한다.

또 인상적인 것은 수업마다 한 명의 반주자가 교사와 함께 들어와 연습에 필요한 음악을 직접 연주해 주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에 자기 동작을 맞추면서 음악적인 감각을 몸으로 체득한다. 게다가 모든 학생은 의무적으로 3~4학년 때까지 피아노를 직접 배운다고 한다.

러시아 무용수들이 어떻게 그렇게 음악과 혼연일체가 된 아름다운 춤을 보여줄 수 있는지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이런 철저한 교육시스템을 통해 '아다지오의 여왕'이라 불린 예카테리나 겔체르, 레닌 훈장까지 받은 마야 플리세츠카야 등 당대 최고의 무용수가 배출될 수 있었다.

국립발레단 간판스타인 김주원도 이곳 볼쇼이 발레학교 출신이고 세계적인 수준의 발레리나 김지영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바가노바 발레학교'를 나왔다.

볼쇼이 발레학교를 졸업하고 부설 연구소에서 지도자 과정을 2년째 밟는 김연정(22)씨는 "발레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파드되를 한국에서는 정식 수업으로 배운 적이 없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여기 와서 처음 배웠다"며 "모든 것을 세심하게 가르쳐주기 때문에 학생들이 발레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학교 전체 학생 300여 명 중 외국 유학생은 100여 명이고, 그 중 8명이 한국 학생이다.

러시아엔 있지만 한국에는 없는 국공립 발레학교. 어쩌면 작은 것처럼 보이는 그 차이가 양국의 발레 공연 수준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mina@yna.co.kr

< 뉴스의 새 시대, 연합뉴스 Live >

<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

< 포토 매거진 >

<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