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맘대로 찍히는데 자꾸 빠져드네 로모 LC-A

2009. 9. 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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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매우 선명한 사진이 찍히는 것도 아니고, 몸체가 튼튼한 것도 아니고, 디자인이 예쁜 것도 아니고, 이런 불만을 깡그리 날려버릴 만큼 가격이 싼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왜 로모카메라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로모그래퍼인 후배에게 꺼낸 적이 있다. "그 장난감 같은 거 머한다 쓰노?" 단도직입 물었다. "뭔가 삐딱하잖아. 지 맘대로 찍히는 것이." 후배의 대답대로 셔터를 누르는 사람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로모는 자신만의 사진을 만들어낸다. 사진 가장자리에 어두운 터널 효과가 생기고 원색은 도드라지게 진한 로모만의 독특한 사진은 전세계에 로모 추종자를 만들었다. 이들을 로모그래퍼라 부른다.

'로모'(LOMO)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레닌그라드 광학기기 조합('Leningrad Optic-Mechanic Union'의 러시아식 표기 약자, 이하 로모사)을 말한다. 소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영향력을 행사했던 동독의 광학기술을 도입했다. 독일 남부 예나에 위치한 카를 차이스사의 오랜 세월 축적된 기술력을 가져와, 소련 시절 군사·우주 개발에 쓰이는 광학 제품을 개발했다. 로모사는 소련 광학 산업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로모그래퍼들에게 로모는 '로모 LC-A' 카메라를 말한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로모 LC-A는 단종되고 최근에는 약간의 기능이 업그레이드된 로모 LC-A+가 팔리고 있다. 로모사에서 만드는 카메라들은 많지만 로모그래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모델은 로모 LC-A다. 로모사는 라디오노프 박사가 스파이용 카메라를 제작하기 위해 개발한 32㎜ 화각과 조리개 값이 f2.8인 'Minitar 1' 렌즈를 이용해서 손바닥 안에 숨겨질 정도로 작은 크기(107×68×43.5㎜)를 가진 로모 LC-A를 생산했다. 그 시기는 1984년부터다. 올해가 로모 LC-A 탄생 25주년인 셈이다. 우리나라에 로모 LC-A가 알려진 것은 얼마나 될까. 원로(?) 로모그래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1999년 언저리에 외국 유학생들이 소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옛소련 정세가 악화될 무렵 로모 LC-A는 자취를 감췄다가 소련이 붕괴되던 1991년 다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 작고 볼품없는 카메라가 철의 장막이 걷힌 것과 함께 부활한 것이다. 처음엔 소련과 주변 공산국가에서만 팔리던 내수용 카메라였지만 지금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옛소련 시대 생산된 로모 LC-A의 개수는 약 45만대로 알려졌다. 현재 로모사에선 1년에 2만대 이상 로모 LC-A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한 명의 노동자가 450여개의 부품을 조여 하루에 한 대의 로모 LC-A를 만든다고 한다.

동영상 기능까지 탑재하고 캠코더의 영역까지 넘보는, 가공할 화질을 자랑하는 디지털카메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시장에 나온다. 그런 최첨단 디지털카메라 대신 초점도 조리개도 셔터 속도도 맞출 필요가 없는 초간단 완전무식 아날로그 필름 '똑딱이' 로모 LC-A가 젊은 세대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로모 카메라가 단순한 기록의 도구가 아닌 '일상의 감정을 담아내는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공감대를 얻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로모그래피 코리아(lomography.co.kr)에 소개된 '사진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형식적이고 복잡한 지식을 해체할 지침' 10가지 가운데 하나를 소개한다. "로모그래피는 인생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다."

글 조경국 <월간 포토넷> 기자·사진 로모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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