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애환 서린 '600년 역사' 흔적 없이 사라져

2009. 6. 1.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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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포티지사라지는 피맛골600년 전통의 저자거리 종로 피맛골에 막바지 철거 작업이 한창이다. 이에 따라 종로 빌딩 숲 한 가운데에서 서민들의 애환 서린 명소로 자리매김 해온 피맛골은 조만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피맛골 철거 현장을 찾아 주민들의 육성을 들었다.

지난 25일 오후 12시경 피맛골을 찾았다. 점심시간임에도 피맛골 내 맛집들은 손님이 뜸했다. 피맛골 입구에서 만난 '열차집' 주인은 아예 의자를 가게 바깥에 내다놓고 신문을 읽고 있었다.

열차집·신승관 등 월급쟁이들 추억 담겨

골목 곳곳엔 점포 이전 알리는 현수막 즐비

건물 매매·세입자 보상 등 문제 아직 남아

점심땐데 손님이 없냐고 물었더니 "철거 공고가 붙은 뒤로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보시다시피 파리를 날리고 있지 않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6.25전쟁 직후 이곳에 처음 가게를 열고 빈대떡을 부치기 시작했다는 열차집이다. 이후 60년간 서민들을 상대로 막걸리와 빈대떡을 팔아오며 쌓아온 '열차집'의 명성도 피맛골 철거와 함께 사라질 판이다.

'열차집' 뿐 아니다. 몇 개 남지 않은 피맛골 맛집 역시 손님들의 발길이 예전 같지 않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마다 영업장 이전을 알리는 현수막과 철거 현장의 가림막이 발길을 막는다. 골목길 곳곳에는 지난 해 촛불 집회 당시 쓴 것으로 보이는 낙서 흔적도 발견된다.

때마침 카메라를 들고 이곳 저곳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20대 여성이 눈에 띄었다. 대학 4년에 재학 중이라는 김모 양은 "피맛골의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이곳에 처음 들렀었는데, 당시의 왁자지껄하고 생동감 넘치던 공간이 이렇게 을씨년스럽게 변하다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양은 피맛골 외에도 옥수동, 세운상가 등 주로 서울 재개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왔는데 훗날 역사의 기록물로 남겨두고 싶은 욕심 때문이란다.

김 양의 지적대로 피맛골은 조선조 이래 민초의 상흔을 간직한 역사의 산 현장이다. 조선시대 고관대작의 행차를 피해 일반 백성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는 뒷골목으로 자리잡은 이래 피맛골은 서민들의 애환을 대변해왔다. 막걸리 크게 한 사발 들이키고 좁게 드러난 하늘길을 따라 걷다보면 곳곳의 풍경이 낯익고 반상의 경계가 따로 없었다. 여기에다 민초들의 저잣거리인 만큼 먹거리 장터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피맛골의 풍경은 일변하기 시작했다. 뉴타운 등 서울시의 재개발 붐이 이곳에도 불어 닥친 때문이다. 처음 피맛골 재개발 논의가 불거질 당시 일각에서는 "경제적 논리에 따라 서울의 역사를 파묻으려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다.

실제로 2004년 1월 피맛골 공사 현장에서는 장대석 10여 점 등 유물이 대거 발견돼 피맛골 재개발 사업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공사를 중단시킨 후 주춧돌과 적심, 도자기 조각 등 유물을 발굴했다. 그러나 이후 이곳에서 잇달아 발생한 화재 사고는 피맛골 재개발 사업을 촉진했다. 문화 유적보다 안전상의 문제가 더 크다고 판단해 재개발 계획을 확정한 것이다.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피맛골의 소문난 맛집들은 속속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60년 전통의 중국음식점 '신승관'은 지난해 9월 북창동으로 이사했고, 그 과정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은 '신승관'의 조리기구 등 273점을 기증 받았다. 피맛골의 터줏대감 '청진옥'도 '르메이에르 종로빌딩'으로 이전했다. 워낙 유명한 관계로 단골손님들이 지금도 즐겨 찾지만 비싼 임대료에 음식 값을 높여야 할지 고민 중이다. 족발로 이름을 날리던 '청일집'의 안주인 임영심씨는 "이사하게 될 줄 알았으면 방명록이라도 만들어 둘 걸 그랬다"며 철거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현재 피맛골 철거는 90% 가량 진행된 상태다. 남은 10%는 철거를 반대한 채 버티고 있다. 가구 수로는 12곳이며 식당이 4곳, 나머지는 2~3층에 사는 오피스텔 거주자들이다. 남아 있는 이유를 묻자 피맛골 입구의 '열차집' 주인은 "철거를 반대하는데 아니라 건물이 매매가 안돼 철거를 못하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건물 매매가 이루어져도 문제는 있다. 세입자에 대한 보상 문제다. 취재 결과 피맛골 안에서 장사를 하는 식당 주인들은 모두 세입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적절한 보상 없이 강제 철거가 이루어질 경우 '용산 참사'같은 불의의 사태가 벌어질 것인가.

이런 의문을 갖고 청진 2~3지구(피맛골) 도시환경정비사업을 맡고 있는 국도개발 측과 대화를 나누어보았다. 국도개발 측은 "남아 있는 영업장에 대해 보상해야 하는데 솔직히 어려운 문제다. 아직까지 땅을 팔지 않고 있는 건물주들도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불러 매매가 안되고 있다. 하지만 용산참사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로 본다. 지금까지 2백군데가 넘는 사업장과 원만하게 합의를 이끌어왔으며 남은 사업장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도개발이 못 박은 철거 시한은 내년 3월. 그전까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명도소송을 통해 강제집행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내년 3월 이후로는 영원히 피맛골의 옛 자취를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이태준 객원기자 회춘하신 이사님~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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