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투기한 사람은 당해봐야 한다?

입력 2008. 12. 27. 10:33 수정 2008. 12. 2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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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제윤경 기자]

20대에는 20평, 30대에는 30평, 40대에는 40평으로, 나이가 들어갈수록 집 크기를 늘리는 것이 효과적인 자산 증식 방법이라고들 했다. 일명 '주테크'의 원칙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안정적이고 확실한 자산 증식 수단인 집의 크기를 늘려가면서 자산을 증식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동산과 관련된 부양책의 일환으로 온갖 규제완화가 쏟아져도 집값이 오르기는커녕 폭락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현실이다. 전세시장마저 찬바람이 불고 있어 집 주인들이 떨어진 전세만큼 세입자에게 이자를 물어주는 역전세, 역월세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불과 올해 초까지만 해도 현 정부에 대한 기대심리로 부동산 시장은 집 가진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존재하고, 집 없는 사람들에게는 공포심을 주는 분위기였다. 바로 그런 잘못된 믿음으로 부동산 시장의 꼭지에 무리하게 '저지른' 사람들의 고통이 점점 극에 달하고 있다.

담보 대출 갚느라 카드 돌려 쓴다

학원 강사인 이씨는 도대체 문제가 어디부터 꼬여 여기까지 왔는지, 그동안 자신이 무언가에 홀려 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2004년 급매로 1억8천만원짜리 아파트를 샀을 때만 해도 갖고 있는 자산 3천만원으로 행운을 거머쥔 것 같았다. 그 당시만 해도 담보대출이 아파트 가격의 80%까지도 가능했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도 '저지를' 수 있는 분위기였다.

금리도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1억6천만원이라는 큰 부채에 대해 크게 문제삼지 않았다. 그 뒤로 아파트 가격은 계속 오르는 분위기였다. 이자만 갚고 부채 원금을 갚지 않아도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다.

이씨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살던 집을 팔아 다시 38평 아파트에 도전을 했다. 집 값이 올라 집으로 돈 벌었다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방 하나씩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소위 주테크를 한 것이다. 살던 집이 팔리기도 전에 더 넓은 집에 덜컥 청약을 했으나 정작 잔금 치를 때는 살던 집의 매각이 잘 안 돼 급매로 팔아 기대했던 차익 실현은 실패로 돌아갔다.

지금은 총 부채가 4억 원가량이다. 그나마 총소득 부채상환비율(DTI)에 걸려 지인의 이름으로 부족한 담보부채를 더 끌어다 썼다. 매월 부채 이자만 갚는다 하더라도 280여만원이 빠져나간다. 소득은 학원 강사이다 보니 불안정한 편이다.

대략 400여만원의 소득으로 이자 내고 나면 생활비가 부족해 올 초 38평 아파트에 잔금을 치르고 나서부터는 현금서비스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해 왔다. 현재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대출만 2600여만 원이 추가로 만들어졌다. 이제는 카드 한도도 거의 다 끌어다 썼기 때문에 더 이상 버틸 여유가 없다.

소득도 불안정한 학원강사가 이렇게 엄청난 빚을 져서 주테크를 한 것을 두고 손가락질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은 많은 사람들을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된 기분에 젖게 만들었다. 이씨가 지나치게 무리한 욕심을 낸 것은 사실이지만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지 않고 지난해와 같은 상승 분위기였다면 오히려 그런 주테크는 성공한 재테크로 부러움을 샀을 이야기가 되었을지 모른다.

집값이 폭락해서 즐겁다?

▲ 실물경제위기 여파, 불꺼진 신축 아파트 단지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한 전 세계적인 실물경제의 위기가 우리 경제도 위협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송파구의 한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경우 지난 8월부터 6천 5백여 세대가 입주를 시작하기로 했으나 실 입주자들이 11월 29일까지 50% 정도에 그쳐 불이 꺼진 곳을 많이 볼 수 있다.

ⓒ 연합뉴스

현재 포털사이트의 토론방에 가보면 부동산과 관련해서 두 가지 상반된 의견들을 접할 수 있다. 하나는 폭락론이고 하나는 반등론이다. 두 가지 의견 사이에는 단순히 시장을 바라보는 견해의 차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 의견 차이들에는 정치적 견해 차이부터 그동안의 부동산 폭등이 준 사회적 상처들이 가득하다.

여기서는 반등론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기로 하자. 이론적 근거도 미약할 뿐 아니라 그저 폭락론을 비판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고 규제완화와 관련된 기대심만 묻어나는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이다. 문제는 폭락론이 현실의 부동산 시장 문제를 냉철히 바라보는 근거가 많이 있다고는 하나 그 안에 유주택자들의 무조건적인 붕괴와 그간의 소외의식에 대한 화가 일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집에 투기한 사람은 당해봐야 한다는 이야기, 집값이 폭락해서 즐겁다는 이야기들이 섞여 있는 상황이다.

이씨와 같이 아무 재무 계획 없이 무리한 부채를 끼고 주택을 넓혀 나가는 것이 부자가 되는 방법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그저 여기저기서 떠드는 이야기들에 흔들리는 소시민일 뿐이었다. 또 저축을 통해 미래에 필요한 돈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고, 펀드도 모르고 살고 빚 내서 집 사놓지 않는 것은 뒤처지는 것이라는 사이비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잘 속은 사람일 뿐이었다.

고령화 충격과 치솟기만 하는 사교육비, 대학교육비에 대한 미래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전문가들이 내놓는 부자 되기 비법을 무작정 ?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펀드나 부동산 투자에 소극적인 사람들조차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허탈함과 소외의식을 경험했던 것을 감안하면 그 누구도 부자 열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그 부자 열풍의 후유증으로 과다한 채무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투기를 통해 차익을 실현한 승자가 아니라 머니게임의 패자로 남아 신빈곤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소외계층이다.

욕심부렸다고 사채시장으로 가도록 방치할 수 없어

부동산 시장이 폭락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상당히 커진 현실에서 이씨와 같이 무리하게 주택마련을 했던 사람들은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현상 유지를 위해 사채에 손을 대거나 부채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 집을 어쩔 수 없이 경매에 넘기는 것이다. 아니면 카드 사용으로 인한 채무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무지막지한 채권추심 끝에 개인회생 절차를 밟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방 하나씩 만들어 주겠다는 주테크의 비극은 평범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거주공간도 잃은 채 빚 독촉의 공포심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극한 상황으로 내몰았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이 지나친 욕심으로 엄청난 짓을 벌였다는 자책과 미친 사람이라는 욕을 들을까봐 어디가서 제대로 상황을 말하지도 못한다.

무리한 욕심을 낸 것이 사실이나 그렇다고 사채로, 불법 채권 추심으로 심지어 어느 곳에도 아무 하소연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 필요까지는 없다.

12월에 발표된 KB국민은행 연구소의 조사내용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주택을 구입한 가구 중 65.4%의 가구가 금융기관으로부터 평균 8744만원을 대출받았다고 한다. 월평균 대출금 상환액도 63만8000원으로 조사되었다. 평균이 이 정도면 상당히 심각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극한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만 봐도 결국 부동산 시장은 큰 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집을 사려는 사람보다 팔아야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가격은 앞으로 상당기간 추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을 유쾌하고 고소하게 바라보는 것은 상당히 잔인한 일이다. 부동산이 돈이 된다며 투기를 부추기는 것만큼 나쁘다고 볼 수도 있다.

이제 집 하나를 둘러싸고 극에 달해 있는 사회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 투기를 부추기는 것도 투기 대열에 끼어 있던 다수의 붕괴를 냉소적인 시각으로 당연하다 여기는 것도 어찌보면 왜곡된 부자 열풍의 끝자락에 있는 우리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이제 시장 폭락 과정에서 극한 상황에 내몰리는 사람들에 대한 구제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현재의 파산과 개인회생 절차는 담보대출의 경우 채무 조정이 불가능하다. 당장의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사채나 카드 대출 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더 크게 키워 가정 경제를 더 극한 상황으로 내몰지 않을 구제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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