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숨은 예술 찾기

2009. 1. 3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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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서울시내 공공미술 산책, 서울역사박물관 앞 정류장도 예술작품이었네

늦겨울 포근한 오후를 골랐다. 서울 도심에 자리잡은 공공미술 작품의 위치를 미리 챙겼다. 세계적인 작가의 블록버스터급 작품과 국내 신예와 거장의 작품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모르고 지나쳤던 벽화와 생각 없이 앉았던 벤치도 '작품'이었다. 서울 도심의 공공미술 작품을 새긴, 등잔 밑 지도를 만들어봤다. 지도를 들고 워킹투어에 나서보자.

이순신 동상이 왜 세종로에 서 있을까

동십자각은 서울에서 가장 외로운 문화재일 것이다. 경복궁의 궁궐 망루였던 동십자각은 교차로 한가운데 외롭게 떠 있다. 경복궁에서도 떨어져 있고 세종로 골목과도 떨어져 있다. 둘을 연결하는 것은 지하도(이영조, 2007, ①)다. 작가 이영조는 지하도(地下道)에 지하도(地下圖)를 그렸다. 한쪽 벽면은 그대로 놔두었고, 나머지 벽면과 천장을 강화유리와 바리솔(천장 마감재)을 덧대었다. 강화유리에는 십자가 결정체가 반짝인다. 이로써 동십자각은 궁궐과 사람을 잇고, 동십자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게 했다. 동십자각 지하도의 매력은 에스에프적 단순함이다. 과거의 경복궁과 현재의 세종로를 연결하는 타임머신 통로를 연상시킨다.

미국대사관을 거쳐 세종로를 따라 내려간다. 이쯤에서 뒤를 돌아본다. 예전의 광화문은 사라지고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의 광화에 뜬 달(2007, ②)이 모자이크처럼 서 있다. 단순한 공사가림막이 아니다. 높이 27m, 가로 41m. 당신이 보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이다. 타일처럼 박힌 7716점의 이미지는 도자기 아니면 옛날 서울 사진이다. 강익중은 여섯달 동안 하루 18시간씩 '우리나라 잘되게 해 주세요' 하면서 그렸다고 한다. 올해 말 복원공사가 끝나면 못 볼지 모르니 가까이 가서 살펴본다.

지난해 촛불집회의 함성으로 일렁였던 광화문네거리에 이르면 이순신 장군 동상(김세중, 1968, ③)이 굽어본다. 청동주물에서도 생동하는 탄탄한 근육과 위풍당당한 풍모는 이순신 장군의 위엄과 용맹을 살려놓았다. 세종로는 조선시대 이후 서울의 중심지이자 상징적 공간이 되어왔다. 이순신 장군 동상 뒤로 인왕산과 북악산이 흘러내리고 조선의 궁궐인 경복궁과 대한민국의 권력 집산지인 청와대가 보인다. 그런데 이런 의문을 품어 본 적이 있는가? 세종로엔 왜 세종이 없고 이순신이 있는 걸까?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건 1968년이었다. 당시는 유신 초입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아산 현충사를 성역화하는 등 충무공을 자기동일시했다. 박 전 대통령은 동상 건립에도 직간접으로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막걸리를 따라주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같은 해 세종대왕상도 세워졌지만 덕수궁에 안치됐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충무로로, 세종대왕상은 세종로로 가야 했던 건 아닐까.

이런 역사가 작품 감상을 어지럽혔는지, 이순신 동상은 권위적으로 다가온다. 충무공은 광화문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순신에 다가가 본 적은 별로 없다. 도로 한가운데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민단체가 동상을 점거하고 기습시위를 벌인 이후에는 경찰이 배치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 충무공에 가까이 갈 수 있었던 유일한 시기는 지난해 5~6월 촛불집회 즈음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광화문 광장 공사 때문에 통제된다.

청계천 광장으로 내려오면 마치 외계 물체가 땅으로 꽂힌 듯한 스프링(클래스 올덴버그·코셔 판 브뤼헌, 2006, ④)이 나타난다. 클래스 올덴버그는 작은 물체를 확대해 시각적 충격을 주는, 재기 넘치는 설치미술가다. 하지만 스프링이 청계천의 도시 맥락에 어울리는지를 두고 논쟁이 있었다. 안내판은 스프링이 "탑처럼 위로 상승하는 다슬기 모양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다이내믹하고 수직적인 느낌을 연출함으로써 청계천의 샘솟는 모양과 문화도시 서울을 상징"한다고 밝히지만, 비판자들은 "명망가의 작품을 사들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스프링은 수평에 파격을 가하는 수직적인 랜드마크다. 어떤 점에서 '우리가 청계천을 복원했다'는 과시로 읽힌다. 스프링에는 35억원이 들었다.

발걸음을 서대문 쪽으로 돌린다. 스프링에 이은 블록버스터 망치질하는 사람(조너선 보로프스키, 2002, ⑤)이 기다린다. 망치질하는 사람(해머링 맨)의 키는 22미터, 몸무게는 50톤이다. 서울뿐만 아니라 시애틀, 프랑크푸르트 등에도 있다. 전세계에서 해머링맨은 망치질을 한다. 노동의 보편성을 상징한다. 지난해 해머링맨은 좀더 인도 쪽으로 옮겨졌고, 거리 가구(스트리트 퍼니처)도 설치됐다. 거인의 발밑에 앉아 잠시 쉬어도 좋다. 건너편 서울역사박물관 앞에는 버스정류장 아트쉘터(최욱, 2007, ⑥)가 있다. 검은 선으로 구성된 승객의 피신처다. 천장은 투명 플라스틱 패널로 비를 피하게 해뒀다. 아이들은 정글짐에서 놀듯 버스정류장에서 논다.

정동길 거리가구에서 낮잠 한숨 어때

경향신문사 앞에서 정동길로 들어선다. 300미터쯤 가면 이화여고 담벽에 그려진 벽화가 나타난다. 미술가 김대성과 계원조형대, 이화여고 학생들이 그린 담꽃(2007, ⑦)이다. 맞은편 정동극장 앞으로 가보자. 어두운 색깔의 철제 벤치가 나타난다. 벤치 아래에서 나훈아의 노래 '잡초'가 울려 퍼진다. 라디오가 들리는 라디오정동(디자인로커스, 2007, ⑧)이다. 정동길에는 여기저기 거리가구가 많다. 예술의 길 사색의 자리(2007, ⑨)로 이름 붙은 최병훈의 거리가구에 앉아보고 누워보고 낮잠 자볼 것. 거리가구는 '예술은 인간과 호흡해야 한다'는 공공미술의 정신을 잘 표현해준다. 서울역 광장의 자, 넓이(박기원, 2003, ⑫)도 거리가구 정신을 구현했다. 빠르고 정확한 기차를 형상화해 제작한 자 모양의 벤치는 서울역의 다른 벤치와 달리 중간에 볼록한 손잡이가 없다. 서울역에서 유일하게 노숙자에게 낮잠을 허용하는 벤치다.

정동길을 나와 종로로 걷는다. 종로1가 종로타워 광장에도 거리가구가 있다. 메타세쿼이아 나무 아래 둥근 벤치가 성성하게 들어앉은 원의 정원(홍승남, 2000, ⑩).건물 뒤로 돌아가면 황금탑 세기의 선물(최정화, 2000, ⑪)이 서 있다. 탑골공원의 원각사지 10층석탑을 본떠 만들었다. 플라스틱에 금색을 칠했다. 작게 만들었다면 필경 탑골공원 기념품가게가 3천원에 주고 팔 모조품이었을 것이다. 고급과 저급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대사회를 비판한 최정화 작가의 정신이 담겼다. 현재 탑골공원의 진본 10층석탑은 훼손 우려 때문에 유리관에 둘러싸여 잘 볼 수 없다. 금부처처럼 금물을 들여 모조품을 내놓았으니 자기복제 시대 '세기의 선물'인 셈이다.

워킹투어 이렇게아는 만큼 보인다

광화문과 정동길, 종로를 잇는 공공미술 워킹투어의 거리는 4㎞다.경복궁 동십자각을 출발해 종점인 종각 종로타워까지 서울 도심을 한 바퀴 돈다.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 아는 만큼 보이는 여행의 진리는 여기서도 통용된다. 서울시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누리집(citygalleryproject.org)에 가면 최근 제작된 공공미술 작품의 설명이 나온다.서울 도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소개됐다. 공공미술 포털을 표방하는 퍼블릭아트(publicart.co.kr)도 공공미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국내외 공공미술 사례 서비스에 들어가면 지도를 통해 자신이 사는 지역의 공공미술 작품을 검색할 수 있다. 설치미술가 강익중(ikjoongkang.com), 조너선 보로프스키(borofsky.com), 클래스 올덴버그·코셔 판 브뤼헌(oldenburgvanbruggen.com) 등의 누리집에 가면 작가의 다른 작업을 볼 수 있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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