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 "연주의 핵심은 한마디로 진정성"

문학수 선임기자 2010. 11. 3.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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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관문화훈장 받고 13~14일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협연

피아니스트 백건우(64·사진)의 얼굴은 그저 담담했다. 생존 연주자로는 처음으로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한 소감에 대해서는 "기쁘고, 고맙고, 책임감이 커진다"고만 답했다. 지난 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백건우는 이번에도 역시 음악 이야기에 집중했다. 이달 13~14일 주빈 메타(74)가 지휘하는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협연할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에 대한 기억과 견해를 털어놨고, "나이 들수록 피아노를 연주하는 게 더욱 조심스러워진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음악은 연주자를 비추는 거울"이라며 "연주의 핵심은 무엇보다 진정성"이라고 강조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은 대표적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인데?

"그의 협주곡 중에서도 3번을 가장 많이 연주했죠. 그 곡은 제게 좀 특별합니다. 15세에 처음 미국에 가서 드미트리 미트로풀로스 콩쿠르에 출전했었는데, 제가 3번을 연습하는 소리를 지휘자 번스타인이 들었어요. 그때 번스타인이 '저 젊은이를 도와줘야 한다'고 추천했다는 얘기를 콩쿠르가 끝난 다음에 들었습니다. 덕분에 미국 줄리아드에서 공부하게 됐죠. 협주곡 3번은 D단조입니다. D단조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적 캐릭터를 가장 잘 드러내는 조성이죠."

말을 마친 그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피아니스트 지용의 팸플릿을 이리저리 펼쳐봤다. 28일 연주회를 갖는 신예다. "몇해 전부터 젊은 연주자들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는 것 같다"고 하자 백건우는 이렇게 답했다. "그냥 함께 연주하는 거죠. 그 아이들에게 뭔가 가르치려는 건 결코 아닙니다. 저는 옛날부터 피아노를 '가르친다는 것'에 회의를 품고 있어요. 음악을 한다는 건 스스로 찾아낸 개성적인 언어로 청중에게 믿음을 주는 작업이죠. 레슨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젊은 시절에는 한 작곡가의 음악을 몇년씩 집중 탐구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요즘에는 그런 방식에서 많이 벗어난 듯 보입니다.

"호기심 때문이었죠. 스크리아빈은 음악에 담긴 심리적 표현들, 그가 그려낸 선과 악의 색채 같은 것에 끌렸죠. 리스트에 집중했던 건 피아노라는 악기의 표현 영역에 대한 탐구 같은 것이었죠. 라벨은 프랑스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빠져들었고, 베토벤의 경우는 음악을 통해 한 음악가의 일생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매달렸죠. 이젠 어느 한 작곡가에 몰입하기보다 전체적으로 음악을 조망하려는 편이죠. 몇해 전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다음부터 그런 변화가 저한테 찾아온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과 지금, 연주에 임하는 태도나 곡 해석에서 차이가 있다면?

"젊을 때는 감정적으로 음악을 해석했어요. 섬세하지 못했죠. 나이가 들수록 조심스러워집니다. 음악이 나에게 말하려고 하는 것, 그 자체에 귀를 기울이게 돼죠. 내 느낌을 앞세우기보다는. (제 은사였던) 빌헬름 켐프 선생이 한음 한음 신중하게,거의 종교적인 태도로 음을 다뤘던 것이 기억나요. 물론 그런 방식이 모든 음악에 맞지는 않겠지만, 제가 같은 곡을 반복해 연습하는 것은 그 음이 담고 있는 게 무엇인지를 찾아내려는 작업인 셈이죠."

백건우는 "위대한 협주곡는 언제나 무궁무진한 느낌을 전해준다"고 했다. "연주할 때마다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된다는 뜻"이라고 부연했다. 이를테면 "라흐마니노프의 3번, 프로코피예프의 2번, 브람스의 1번"을 그런 협주곡으로 예시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런 곡을 써낼 수 있는지 놀랍다"면서 "어쩌면 그건 인간 혼자서 해내는 일이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말은 얼핏 종교적으로 들렸다. 재차 설명을 부탁하자, "갈구하다 보면 영감이 찾아오고, 작곡가는 그것을 오선지 위에 받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마지막 질문은 최근의 젊은 연주자들에 대한 평가와 조언이었는데, 그는 즉답을 피하고 이렇게 에둘렀다.

"좋은 음악을 만들려면 갖춰야 할 게 참 많겠죠. 한데 가장 중요한 건 인간성인 것 같아요. 음악은 명백한 거울이니까. 거기엔 거짓이 있을 수 없거든요. 저도 가끔 청중의 입장에서 음악을 듣는데, 참과 거짓이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요. 그것이 정말 자신이 찾아낸 음악인지, 아니면 청중을 의식하며 만들어내는 것인지, 혹시 명예를 얻기 위해서 연주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이에요."

그는 서울에서 13~14일 협연할 이스라엘 필하모닉에 대해서는 "현악기가 좋은 오케스트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지휘자 주빈 메타에 대해서는 "아시아 출신으로 그만한 성과를 이뤄낸 지휘자는 인도 출신의 주빈 메타와 일본의 세이지 오자와뿐"이라고 말했다.

< 문학수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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